참혹한 지진 이후 8개월째 재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최빈국 아이티에 축출된 독재자의 부정축재 자금이 반환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음달 스위스 하원에서 스위스 은행계좌에 예치된 부정축재 자금의 본국 반환요건을 완화하는 일명 '뒤발리에 법'의 표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법원은 지난 1월 스위스 정부가 동결한 장클로드 뒤발리에 전 아이티 대통령 명의의 스위스 은행계좌에 담긴 500만달러(이자 포함 590만달러)를 뒤발리에 측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공교롭게도 이 판결이 내려진 수시간 후 아이티 지진이 발생해 전세계에서 비난이 스위스로 집중됐다. 결국 스위스 정부는 뒤발리에의 문제 계좌를 계속 동결한 채 법 개정을 서둘렀다.
현 스위스의 부정축재 재산 본국송환법은 1986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대통령의 재산 환수를 계기로 처음 만들어졌다. 현행법은 불법자금 반환을 요청한 정부가 부정축재 관련 범죄에 대해 공식수사에 착수해야 관련 예금을 송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티와 같이 물러난 부정축재자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력하고 정부가 취약해 불법행위 수사가 어려운 경우는 자금 반환이 불가능하다. 새로 제정될 '뒤발리에 법'은 부정축재 혐의자가 공직에 있는 동안 비정상적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점을 스위스 정부가 제시하거나, 해당국에서 그 돈이 부패로 벌어들인 것이라고 인정될 경우 돈을 상환하도록 규정을 완화했다. 또 부정축재와 관련이 없다는 입증책임을 혐의자가 지도록 했다.
그러나 새 법 역시 부정축재자를 응징하기에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스위스 형법전공 마크 피에트 교수는 "뒤발리에 법 역시 축출된 권력자에게만 적용이 가능하다"며 "부패가 만연한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권력자에게는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고 2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개발도상국 독재자들의 부패자금을 추적하는 미국기관 '글로벌 파이낸셜 인테그리티'는 현재 스위스 은행에 은닉된 부정축재자금이 1,500억달러(약 177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중 본국에 반환된 돈은 16억달러(약 1조9,000억원)에 불과하다.
뒤발리에의 부정축재 추정액도 아이티 정부는 3억~9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뒤발리에 법'이 통과돼도 환수 가능한 돈은 590만달러에 불과하다.
스위스 의회의 법 제정을 앞두고 현재 프랑스에 망명중인 뒤발리에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뒤발리에는 "의회가 새 법을 통과시키면 유럽 인권재판소 제소를 포함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재산을 지킬 것"이라고 WSJ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밝혔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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