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인 1990년 8월 20일 아침, 당시 건설부 장관이 소집한 직원 조회에서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진다. 400여명의 직원들이 장관을 앞에 두고 집단 퇴장한 것이다. 건설부의 일부 기능을 지자체와 산하기관에 이관하는 계획을 설명하려던 장관에 맞서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반발한, 이른바 집단 항명사태였다. 소통 부족도 한 요인이었으나 당시 장관이 추진한 개혁이 건설부 이익에 배치된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 당시 장관은 한 달 후 경질된다.
자기 부처 이익만 따져서야
장관이 부처 이익에 반하는 개혁을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 주는 사례다. 보통 1~2년 머물다 가는 장관이 직업 공무원들의 지원을 얻지 못하면 한 걸음도 나가기 어렵다. 인심을 잃었다간 부하들의 입소문으로 여론도 나빠지며 심하면 위 건설부 장관처럼 불명예 퇴진할 수도 있다.
이러니 대부분의 장관들은 자기 부처이익에 반하는 개혁에 대해 시도는 고사하고 필요성도 인정하지 않는다. 장관을 하다 보면 내 부처 이익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도 한 요인이다. 심하게 말하면 부하 직원들에 포획되는 것이다. 점차 장관은 자신이 국정 전반을 살펴야 할 국무위원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나아가 부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국가적으로 필요한 개혁이라도 앞장 서 막게 된다. 얼마 전 투자개방형 영리 의료법인을 두고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충돌했을 때 정치인 출신 전직 복지부 장관의 활약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장관은 부처를 이끄는 기관장인 동시에 국무위원이다. 헌법은 이 두 가지 역할을 분리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두 역할이 충돌할 때 많은 장관이 "칸막이의 포로가 되어 국무위원의 역할은 망각한 채 부처의 이익만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기가 쉽다." 이는 최근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장관 직무가이드'에서 전임 장관들이 스스로 밝힌 내용이다.
국무위원 자격이 없는 골목대장 장관은 요즘 한창인 예산 편성 철에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과도한 예산을 요구하며 부처 몫을 챙기는 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부처가 일을 잘 하기 위해 예산을 최대한 따내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장관은 임기가 짧아, 따낸 예산으로 어떤 성과를 냈는지 평가 받지 않는다. 그 대신 장관이 확보한 예산 자체가 업적으로 칭송 받는다. 예산을 집행하면서 부처의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러니 장관은 성과는 뒷전이고 무리를 해서라도 예산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러나 국무위원이라면 사업을 위해 예산을 더 투입해야 한다는 단순 논리가 아니라 예산 대비 효과를 고려하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예컨대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예산 증액을 주장하기에 앞서 돈을 써서 출산율이 얼마나 올라갈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예산의 효과를 따져 보아야 사업의 국가적 우선순위를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부처 이기주의 행태가 빈번히 노출되었던 부처들에 정치인 장관이 내정된 점은 골목대장 장관에 대한 우려를 더 깊게 한다. 정치인 장관은 국회에 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개혁을 저지하는 등 부처 이익을 관철할 역량이 대체로 높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권 내 지분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대통령의 귀를 잡는 데에도 유리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로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정치인 장관이 오는 것을 반긴다.
국무위원 자격 여부 청문을
대통령 임기 후반에도 국정개혁이 계속되려면 장관들이 부처 이익을 지키는 골목대장이 아니라 국무위원의 시야를 가지고 일을 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청와대는 장관 직무 수행만이 아니라 국무위원의 역할 수행 여부도 평가하길 바란다. 그 평가에 중립적인 전문가와 언론도 가세해야 한다. 또한 국무회의에서 타 부처 소관에 대해서도 서로 적극 발언하는 풍토도 필요하다. 마침 오늘 인사 청문회가 열린다. 장관 후보들이 골목대장 장관 감인지 국무위원 감인지를 파악하는 것도 하나의 청문 포인트가 되었으면 한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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