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45ㆍ사진)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창비 발행)를 냈다. 22세의 이른 나이에 등단, 관조적 시선과 세련된 언어로 개성있는 서정시를 써왔던 그는 지난 시집 (2005)를 통해 한결 현실과 생활을 살피는 문학적 변모를 보여줬다. 이번 시집은 그러므로 어느덧 40대 중반에 이른 시인이 지난 5년 간 행한 시적 모색의 결실일 것이다.
생활인으로서 스스로를 성찰하는 시인의 태도는 이번 시집의 발문을 쓴 극작가 최창근씨의 지적대로 ‘죄의식’에 다름아니다. “험한 욕을 입에 담고는/ 반성하며 돈을 센다/ 이웃의 더한 속물, ‘참고로 그는 정치를 한단다’에게 쌍욕을 해대고/ 멀쩡한 낯으로 거리를 나서서/ 평온한 거리를 어지럽힌다/…/ 나에게 이렇게 많은 죄가 쌓이니/ 봄이 밀리듯 죄가 밀리니/ 씻을 길이 없다”(‘은둔자’에서)
세속에 물들어가는 제 모습에 대한 시인의 자책은 설사가 나서 드나드는 화장실에서도 이어진다. “똥이 튀어 변기를 닦았다/ 나의 윤리/ 불혹이 넘어 겨우 찾은/ 생활의 윤리/ 내 방황의 뿌리가 여기였는가?/ 그 이후로는/ 소변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경솔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가난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 돈을 성욕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바람 속을 걸어본다”(‘변기를 닦다’에서)
이토록 적나라한 자기 고백은 시인의 염결한 성품의 반영일 테고, 또한 그가 세속의 격랑을 헤치고 순연한 시심의 원천에 가닿게 하는 힘일 테다. 이를테면 묵을 먹으며 사랑을 생각한다는, 뺨으로 사랑이 넘나든다는 그 남다른 상상과 서정 말이다. 그렇다면 ‘생활인 장석남’에 대한 반성은 결국 ‘시인 장석남’으로 온전히 살고자 하는 시인의 문학적 수행일 수 있겠다.
“나는 묵을 먹으면서 사랑을 생각한다오/ 서늘함에서/ 더없는 살의 매끄러움에서/ 떫고 씁쓸한 뒷맛에서/ 그리고// 아슬아슬한 그 수저질에서/ 사랑은 늘 이보다 더 조심스럽지만/ 사랑은 늘 이보다 위태롭지만// 상 위에 미끄러져 깨져버린 묵에서도 그만/ 지난 어느 사랑의 눈빛을 본다오”(‘묵집에서’에서)
“이번엔 그녀가 나의 붉은 뺨을 열고 들어왔다 봄비처럼 그녀의 손이 쓰윽 들어왔다 나는 두 다리가 모두 풀려 연못물이 되어 그녀의 뺨이나 비추며 고요히 고요히 파문을 기다렸다”(‘뺨의 도둑’에서)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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