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산림연구기관연합회(IUFRO)의 총회가 오늘부터 28일까지 서울에서 열린다. 지난 40년 동안 나무를 많이 심은 한국에서 산림학 분야 큰 행사가 열리니, 축하할 일이다. 나는 강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식목일이면 학생들은 녹화사업에 동원되었다. 당시 산은 벌거숭이였다. 그 산에 나무가 자란다는 막연한 희망에 우리들은 즐겁게 땅을 파고 묘목을 심었다. 거의 40여 년이 지난 지금, 낙엽송들은 10㎙ 높이로 자랐다. 아직도 아름드리나무는 아니다. 지름이 겨우 20㎝ 정도이니.
생태성 경제성 부족한 우리 산림
독일에서 유학할 때 처음 있었던 곳이 슈바르츠발트, 곧 흑림의 거점도시 프라이부르크였다. 나무 나이 100년, 지름이 50㎝ 되는 전나무 등이 까맣게 들어찬 숲. 몇 년 후 이사한 하이델베르크에는 오덴발트라는 활엽수의 거대한 숲이 있다. 거기서 주말마다 걸었던 나는 숲을 정말 사랑했다.
연구년으로 캐나다 밴쿠버에 갔을 때에는 도시 가까운 곳의 원시림에 놀랐다. 다양한 숲을 겪었기에, 어릴 때 심었던 나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기쁘면서도 동시에 안쓰럽다. 40년이 자라도, 굵지 않은 나무들이라니! 한국 사회는 압축성장을 했지만, 나무들은 압축성장을 하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기어가듯 조금씩 자랐을 뿐이다. 그 앞에선 숙연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 있다. 나와 친구들이 심었던 나무들은 그나마 비교적 잘 관리된 산림에 속한다. 그러나 많은 숲들은 그렇지 않다. 심어놓기만 하고 관리를 하지 않아서 나무들이 서로 뒤엉켜 있다. 숲의 밀도가 높으니 유기물이 많이 생겨 산불도 나기 쉽고, 벌레 피해도 입기 쉽다. 숲에 생태성도 부족하고, 경제성도 없는 것이다. 이런 숲의 면적이 점점 커지다 보니, 관리가 더 안 된다. 관리되지 않은 나무들이 오히려 숲을 망치는 상황이다. 햇빛이 들지 않으니 나물도 잘 자라지 않는다.
그러니 산림청은 단기간에 나무를 제일 많이 심었다는 자화자찬을 그만두라. 과거에 온 국민을 동원한 녹화사업은 비교적 성공했지만, 그것도 녹화사업만의 성과는 아니다. 경제성장 덕택에 나무가 땔감 등으로 낭비되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숲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성찰이 필요한 때다. 한꺼번에 심어놓은 나무들 나이가 비슷해서, 후속 세대를 위한 관리도 안 된다.
산림을 '주차간산' 식으로 본 사람들은 숲에 나무가 울창하다며 대견해한다. 착각이다! 실제로는 많은 산림이 엉망인 것을! 숲을 관리할 적절한 숲길이 필요한데, 실제로는 아예 없거나 거꾸로 숲을 망가뜨리는 임도(林道)가 많다. 사람들이 가까운 숲에 가서 걷지 않으니 실상을 모르는 것이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이제까지 동네 숲과 도시에 가까운 숲에서 산책하며 숲을 가꾸는 일을 하지 못했다. 서울 한복판 인왕산과 안산조차도 숲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
많은 산림 관계자들은 습관적으로 전국의 몇몇 숲들을 자랑하곤 한다. 언론은 받아 쓴다. 그러나 관광지 소개하듯 숲을 소개하는 행태는 부끄러운 일이다. 사람들이 광릉수목원이나 오대산 등 유명한 몇몇 숲에 관광하듯 가서 삼림욕을 하거나 등산을 한들, 숲은 얄팍한 전시행정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숲을 잘 관리하면 일자리도 생겨
산림청은 비유하자면 정부 부처들의 숲에서 다른 부처들에 눌려 자라지 못하는 불쌍한 나무였다. 녹화사업 이후 어떤 국가 지도자도 숲에 대한 전망과 상상력이 없었고, 산림책임자도 마찬가지였다. 영토의 태반이 산인데! 생태주의자들도 숲의 생태에 대해 추상적으로 말한 면이 있다. 숲을 가꾸는 구체적인 실천에는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다.
숲은 물론 생태적으로 단순히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는 존재다. 더욱이 그 숲을 잘 관리할 때 많은 사회적 일자리가 생긴다. 그런데도 우리는!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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