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가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미 달러에 대한 엔화 환율(엔ㆍ달러 환율)은 20일 85.32엔을 기록하는 등 이달 들어 1995년 이후 최저치(95년4월18일 80.63엔)인 85엔대를 맴돌고 있다. 지난 5월초만해도 달러당 95엔을 넘보던 엔화 값이 최근 급등하자, 원화 역시 엔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엔고 현상이 국내 증시에 호재가 될지 악재가 될지 부지런히 계산기를 두드리는 중이다. 사실 주식시장의 입장에선 엔고 현상을 무턱대고 반길 수 없는 일이다. 선진국 특히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로 인해, 글로벌 자금이 안전자산인 엔화로 피신하고 있다는 점은 대표적 위험자산인 주식시장에는 불리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엔고 현상은 국내 증시에 나쁜 뉴스는 아니다”는 쪽으로 결론이 모아지고 있다.
자동차, 엔고 반사이익 누릴까
엔화가 비싸지면 세계 수출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장사하기가 수월해진다. 한국과 일본은 주요 수출 품목과 시장에서 가장 많이 겹치는 라이벌. 원ㆍ엔 환율이 국내 수출기업의 실적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영증권 김재홍 연구위원은 “원ㆍ엔 환율이 오르고(엔화 가치 상승) 3~4개월이 지나면 일본의 무역수지가 둔화돼, 일본과 기술경합도가 높은 한국 기업의 수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원ㆍ엔 환율(100엔당)은 연초 1,250원대, 특히 4월말 1,170원대에서 지금은 1,370원대로 올랐다.
대표적인 엔고 수혜주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증시를 주도해온 수출주, 즉 자동차와 정보기술(IT) 업종이다. 대우증권 고유선 글로벌경제팀장은 “원ㆍ100엔 환율이 1,300원 후반대에 복귀함으로써, IT 자동차 등의 수출기업들은 한때 일본의 수출 증가세에 뒤진 부분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두 업종에 대해서도 평가는 엇갈린다. 2000년 이후 원ㆍ엔 환율과 업종별 영업이익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원ㆍ엔 환율이 오를수록 국내 기업의 이익이 가장 많이 늘어난 것이 자동차였다. 반면 반도체 전자 디스플레이 등 IT 업종은 상관계수가 0.4도 채 되지 않는 등 엔고 효과가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에 핵심부품 및 제조장비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엔화가 비싸지면 부품 수입 비용이 증가하면서 수출 확대 효과가 상쇄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엔고 현상은 국내 증시의 방패막이
엔화 가치가 역사적 고점 수준에 가까워졌다는 점에서 벌써 엔화가 급락 반전할 가능성에 대한 걱정도 시작되고 있다. 원ㆍ엔 환율 상승의 효과가 1분기 이상 후행해 나타나는 만큼 아직 우리 수출업체들과 주식시장은 엔고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 상태. 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 달러에 대해 엔화 강세, 원화 약세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지난해 초에는 원ㆍ엔 환율이 1,600원선을 육박할 정도로 급등, 한국의 수출 확대 효과가 컸다.
하지만 지금은 엔화뿐 아니라 원화도 미 달러에 대해 강세 기조인데다가 미국을 비롯한 주요 수출시장의 경기 전망이 불투명해져, 강력한 엔고 수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우증권 고 팀장은 “연말까지 엔화가 달러당 85엔대를 중심으로 등락하며 강세를 이어가고 원ㆍ엔환율도 1,300원대를 유지하겠지만, 세계 수요가 둔화되고 있어 작년처럼 수출 시장 점유율을 크게 확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엔고 덕분에 국내 증시가 선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현대증권 양창호 연구원은 “미국 중국 등 주요 2개국(G2)의 경기 둔화 우려에도 코스피지수가 선방하는 것은 엔화 초강세가 최근 원화 강세의 영향을 완충해주기 때문”이라며 “엔고는 국내 증시 하락을 방어하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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