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도 공주교도소 재소자들은 나를 친근하게 대했지만 재소자 권익보장촉구 단식투쟁이 있고는 더욱 더 그랬다. 자기들이 그토록 바라던 삭발금지, 신문구독 등을 요구해준 데다 그런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투쟁에 동참할 수 있게 했으니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석 때는 온갖 정성을 들여 갖가지 선물을 보내왔다. 선물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조건에서 보내온 그 선물들을 앞에 놓고 어떻게 해야 이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싶어 걱정했던 일이 어제 일만 같다.
공주교도소에 있으면서 재소자 권익보장을 위해 집요하게 노력한 것은 6ㆍ29선언 후 계속 미뤄졌던 나의 석방이 임박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석방되면 다른 정치범도 대부분 석방될 것이어서 정치범이 석방되고 나면 재소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요즘 피의자 내지 범죄자의 인권보호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피해자의 인권과 고통은 오히려 소홀히 다뤄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고 나도 그런 비판에 상당 정도 공감하는 편이지만, 그동안 피의자나 범죄자의 인권이 지나치게 유린된 데 대한 반작용이란 점 또한 고려돼야 할 것이다.
나는 10년 가까이 교도소에 있으면서 억울하게 징역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목격했다. 특히 교정당국이 행정편의를 위해 재소자의 인권을 지나치게 억압함으로써 재소자의 인권이 유린되는 것은 물론 교정교화가 이뤄지지 못해 재범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걸 많이 보았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안전을 위해서도 재소자의 처우가 개선돼야 함을 절감했다.
이처럼 재소자 권익보장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많은 재소자들이 내게 애로사항을 물어왔다. 그런 가운데 목공반 반장인 이수옥이란 사람이 나를 찾아와 자기가 징역을 살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자기는 부천의 어느 태권도장에서 사범을 하고 있었는데, 5ㆍ17후 어느 날 갑자기 깡패라는 누명을 쓰고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군법회의에서 15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9년째 살고 있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자기처럼 억울하게 잡혀와 중형을 선고 받은 사람도 많거니와 삼청교육대에서 순화교육이란 이름으로 엄청난 인권유린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목공반 재소자들의 말이나 내가 본 바로 그는 깡패이기는커녕 너무나 선량했다. 다만 몸이 너무 좋아 깡패로 오해 받은 것 같았다. 별로 잘 먹는 게 없는 교도소에서도 그의 상체는 완전히 정삼각형을 이루고 있었다. 몸이 유별나게 좋고 태권도장에 다니니 후리가리(경찰의 조직폭력 일제 단속)로 잡혀와서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것 같았다. 깡패소탕은 옳지만 그 명분으로 선량한 사람을 깡패 취급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마침 이때 국회 법사위원인 강신옥, 조찬형의원이 접견을 왔기에 삼청교육대의 인권유린에 대해 설명하고는 삼청교육대 관련자도 5공비리 척결 차원에서 석방돼야 할 거라고 강조했다. 또 평민당의 김대중총재가 접견을 왔을 때도 이 문제를 자세히 설명하면서 구제를 요청했다. 결국 그 뒤 삼청교육대의 인권유린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올림픽 직후 특사 때 200여명의 관련자 가운데 약 80명이 석방됐다고 했다. 이수옥도 이때 석방됐는데, 내 덕분에 석방된 것처럼 소문이 나 나에 대한 재소자들의 기대가 더욱 더 커지기도 했다.
그런데 9월 중순 올림픽 직전 김대중 총재가 접견을 왔다. 아내를 통해 접견을 오겠다는 연락이 와 함께 있던 박시종, 최진수 등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더니 이들은 접견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보분열로 민주화를 무산시킨 데다 정치범 석방에 소극적인 사람을 만나서 무엇 하느냐는 게 그 이유였다. 이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었지만 나로서는 평소의 친분 때문에도 접견을 거부할 수 없어 후배들을 설득했다. 그래서 김 총재의 과오에 대해서는 비판하되 광주·5공투쟁을 확실히 할 것과 재소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요구키로 했다.
김 총재에 대한 공주교도소의 대접은 아주 특별했다. 우선 50여평이 넘는 직원 휴게실을 비워 접견 장소로 만든 데다 그 중앙에 대형 책상을 가져다 놓고 예쁜 꽃바구니로 장식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제1야당의 총재여서 그런 대접을 했는지, 아니면 심모 교도소장이 김 총재를 특별히 존경해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심모 소장은 나에게 호의적이었으나 나 때문에 그런 대접을 할 리는 없었다.
이날 나는 김 총재와 몇 마디 인사말을 주고받고는 직설적으로 ‘4자필승론은 맞지도 않거니와, 설사 4자필승론으로 대통령이 된들 그것이 민주화일 수 있습니까?’, ‘4ㆍ26총선에서 야당이 지역감정에 따라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쪼개진 것을 황금분할이라고 하던데, 망국적 지역감정에 기초해 제1야당 총재를 하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까? 지역감정을 배격하는 뜻에서 평민당을 해체하든가 평민당 총재직을 사임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더니 김총재가 겸연쩍어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고서 광주·5공 투쟁에 주력할 것을 촉구하고는 재소자 처우개선과 관련해 많은 요청을 했다. 특히 삭발의 반인간성과 가정파괴성 등 재소자 처우개선의 당위성을 설명하고는 국회에서 행형법을 개정할 것을 요청했다. 김 총재는 ‘나도 징역을 살아보았지만 재소자 문제에 대해 장 동지만큼 자세히 생각해보지는 못했다’고 말하면서 재소자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나는 삼청교육대에서의 인권유린을 지적하고는 삼청교육대 관련자도 정치범으로 간주하여 사면해야 할 거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공감했다.
접견이 끝날 무렵 김 총재는 ‘아직도 석방되지 못한 양심수가 있는 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올림픽 후 대폭 석방하지 않으면 단호하게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이날 접견은 당연히 공주교도소에서 큰 화제거리가 됐다. 재소자 처우개선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약속도 화제거리가 되었지만 김 총재에 대한 나의 직언도 화제거리가 되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