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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탐지 권위자 알데르트 브리지 교수 강연/ "아동은 진술 바꿔도 진실 가능성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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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탐지 권위자 알데르트 브리지 교수 강연/ "아동은 진술 바꿔도 진실 가능성 높다"

입력
2010.08.2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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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충남 소도시에 살던 여중생 A양이 실종됐다. A양은 1남3녀 중 둘째 딸이었다. 경찰 조사에서 막내 남동생 B(5)군은 "큰 누나가 누나를 죽였어. 그래서 엄마아빠가 버렸어"라고 진술했다. 부모는 펄쩍 뛰었다. 경찰은 난감했지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했다. 며칠 뒤 A양은 살인 전과자인 납치범에게서 도망쳐 집으로 돌아왔다. B군은 누나의 실종으로 가족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떠나자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섯 살 미영(가명)이는 엄마 김모(39)씨의 애인 박모(50)씨에게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본보 6월12일자 12면). 뒤늦게 사실을 안 김씨가 박씨를 경찰에 고소했고, 미영이는 자신이 당한 일을 말했지만 법원은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아이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동심리상담사 등 전문가들이 미영이가 성추행 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소견서를 다수 제출했지만 소용 없었다.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통념인데, 범죄 상황에 아이가 개입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무턱대고 믿을 수도, 의심할 수도 없는 아동의 범죄관련 진술. 어떻게 확보하고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거짓말 탐지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알데르트 브리지(Aldert Vrij) 영국 포츠머스대 심리학과 교수는 20일 서울대 멀티미디어강의동에서 열린 한국심리학회 연차 학술대회에서 5시간 동안 진행된 워크숍 내내 "아동은 어른이 상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이유에서 거짓을 말하게 되며, 상황과 질문하는 사람의 태도 등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진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리지 교수에 따르면, 아동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엄마한테 혼날까 봐, 기억이 안 나서, 경찰아저씨가 무서워서, 선생님 얘기가 더 맞는 것 같아서 등. "어른이 자꾸 물으면 아이는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해서 어른이 만족하는 표정을 지을 때까지 계속 답을 바꾼다. 이런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양이 그림을 보여주며 뭐냐고 물었을 때 아이가 "고양이"라고 대답한 상황에서, 질문자가 계속 "그런가, 잘 봐. 이게 뭐지?"라고 반복해 물으면 아이는 계속 답을 바꾸다 "호랑이"라고 답한다는 실험도 소개했다.

아동의 진실과 거짓에 대한 오해도 소개했다. 흔히 말을 바꾸거나 기억을 못한다고 얼버무리는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자발적으로 자신의 진술을 수정하는 아이가 진실을 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브리지 교수는 "거짓말을 하는 아이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 수정을 하지 않고 어른의 신뢰를 깨기 싫어 기억 못한다는 말도 안 하는 경향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질문자의 실수로 아동 전체 진술이 쓸모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수사단계에서 아동이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면담자는 아이에게 '이 내용을 잘 아는 유일한 사람은 너야, 내가 질문을 많이 할건데 네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야, 선생님은 모르니까 네가 나에게 그날 일을 알려줘'라고 친밀감을 형성하는 태도를 취하라"는 것이다.

이날 워크숍에는 경찰 수사관, 프로파일러(범죄행동분석요원), 소년보호시설 근무자, 심리상담사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한 경찰관은 "목격자나 피해아동이 진술을 번복하면 믿을 수 없는 말을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데, 오늘 배운 아동의 특성을 보다 유념하고 수사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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