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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종편'을 어찌할꼬?

입력
2010.08.2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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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다.”올해 초인가, 어느 모임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한 말이다. 이유는 물론 종합편성채널 때문이다. “해주고 욕먹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정권까지 흔들릴 수도 있는 이 어려운 짐을 내가 왜 맡았던고.”후회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지금 분위기를 놓고 보면 그의 고민과 걱정이 기우만은 아니다.

아직도 일부에서 제기하는 종편 자체에 대한 반대는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있다. 절차에 대한 논란은 남아 있지만, 종편 도입 원칙의 ‘강’은 사실상 건넜다고 봐야 한다. 지상파 TV의 독과점 폐단을 없애고, 신문의 방송 진입을 허용해 미디어융합시대에 걸맞은 산업구조를 갖춰야 한다는 당위성을 정부의 방송장악 논리로만 반박할 수는 없다.

정해진 게 거의 없는 기본계획

문제는‘누가’‘어떻게’이다. 결과에 따라서는 무시무시한 적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궁리해 봤자 묘안이 나올 수 없다. 어차피 종편채널 허용 숫자는 제한되어 있고 욕심을 내고 덤벼드는 신문이 한 둘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이렇게 하겠다”라고 했다가는 그것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소위 거대 신문들의 몰매를 감당할 수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 신문들의 태도가 어떤가. 자신들이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이고, 정권 수호의 선봉장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이런저런 역사적 당위성과 자격을 거론하며 ‘종편은 당연히 내 차지가 되어야 한다’고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기대가 무산됐을 때,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를 한 번 상상해보자. 정부로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이다. 그러니 가능하면 누구도 실망시키지 않는 애매모호한 자세로 갈 데까지 갈 수밖에.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17일 종합편성채널 기본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세상에 이런 계획은 없다. 단순히 선정방식, 사업자 수, 심사배점이 모두 복수 안이기 때문이 아니다. 내용을 보면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모두에게 줄 수 있고, 한둘만 줄 수도 있다. ‘혹시 탈락하더라도 선물(보도채널)을 주는 방법도 생각 중이니 지레 섭섭해 하지 말라.’

방통위는 이런 계획안을 내놓은 것은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공청회 등을 통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간, 이념간 대립과 자기 이익에 함몰된 우리사회에서 여론과 합리라는 것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주관적인가. 객관적 여론이 생명인 언론부터 그렇다. 방통위의 계획 발표 후 이해당사자인 5개 신문이 일제히 소위 ‘여론과 합리’라는 이름으로 제각각 자기 욕심을 드러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누구는 사업자를 하나만 허가하자고 한다. 누구는 기준에 맞으면 복수로 허용하자고 한다. 하나를 주장하는 쪽은 방송광고시장의 규모를 이야기하고, 둘 이상을 주장하는 쪽은 보다 다양한 채널 선택을 강조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하나같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선정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내가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아니면 차라리 경쟁자에게도 주지 말라는 식이다.

이런 상황을 만든 데는 정부가 지나치게 종편에 집착한 책임도 크다. 그것이 종편을 또 다른 독과점ㆍ특혜로 생각하도록 만들었고, 과잉경쟁에 불을 붙였다. KBS 2TV 광고 축소와 수신료 인상 등이 모두 정부가 시장구조를 개편해서라도 종편을 키워주기 위한 것이라는 오해까지 낳게 했다. 신문들로 하여금 종편 채널을 차지하지 못하는 신문은 미디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의식까지 갖게 했다.

소신과 원칙 못 정할 이유 있나

그러나 종편은 지상파의 독과점 구조를 해소하고, 여론의 다양성과 미디어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위한 선택이지 특정 신문을 위한 특혜도, 정부가 발벗고 나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들어줘야 하고, 특정 신문의 눈치를 보며 규모와 기준을 결정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소신과 원칙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탈락할 신문들의 공격이 무서워 정부가 망설이고, 최시중 위원장이 잠을 못 이루어서는 안 된다. 평가는 그들이 아니라 국민과 역사가 한다.

이대현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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