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원 지음
실천문학 발행ㆍ112쪽ㆍ8,000원
시인이자 소설가인 송기원(63)씨의 네 번째 시집이다. 송씨는 이번 시집의 수록작 65편 중 58편을 지난 4, 5월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썼다고 했다. 그가 쏟아낸 시들은 가지런히 죽음을 주제로 하고 있다.
문학이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송씨의 이번 시집의 특이한 점은 지금 막 죽음을 맞은 사람을 시적 화자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산 자가 죽음을 탐문하는 것이 아니라, 사자(死者)가 자기 체험을 발설하는 것이다.
‘입안에, 누군가가/ 쌀 한 줌을 넣어주면서/ 나는/ 비로소 죽는다.// 염을 하는/ 시체의 구멍마다/ 썩은 물이/ 비문(碑文)을 새기고// 비문에서 떨어져 나온 것들이/ 헌 옷이나 살비듬, 혹은/ 뒷소문처럼/ 남은 사람들의 불에/ 던져진다.// 그런대로 향기롭구나./ 내가/ 내 죽음의/ 절차를 견디는 일.’(‘임종’)
송씨가 발휘하는 죽음의 상상력은 관념과는 거리가 멀다. 시 ‘육탈’에서 묘사했듯이, 죽음은 ‘굶주린 독수리며 까마귀며 산짐승’에게, 이어 ‘파리, 개미, 풀이며 키 작은 나무들’에게 차례로 제 시체를 먹혀 결국엔 뼈만 남는 물질적 과정이다. 뭇사람에게 죽음의 공포를 일으키는 그 처절한 소멸의 과정을, 그러나 시인은 ‘평생을 꾸정모기로 그악스럽던 내가/ 처음으로 부드러운 선물을 주고받’는 일이라 일컫는다.
그는 이처럼 죽음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생사의 불퉁한 경계를 지워간다. ‘이제 막 꽃잎을 여는 원추리 앞에서, 네가/ 무심코 진저리를 칠 때/ 나는 원추리와 함께 있다./ 바람 한 줄기를 따라, 온몸으로/ 원추리를 통과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거나 혹은 죽어 있다고/ 표현하지 말자./…/ 꽃들이 한꺼번에 벙글어지는 봄날/ 너와 나도 한꺼번에 벙글어진다면/ 삶과 죽음은 어차피 둘이 아니다.’(‘교감’)
모든 죽음은 자연사라는 것이 그의 깨달음이다. 생명은 애초 죽음을 품고 인간의 몸에 깃드는 것이기에. ‘태어나 첫 숨을 들이마실 때에도/ 첫 숨만큼 나는 죽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일곱 살 푸르른 때도/ 십 분의 얼마만큼 나는 이미 죽었다.’(‘자연사’에서) 송씨는 “죽음에 대한 지나친 공포에서 벗어나, 삶과 병행되고 있는 죽음을 감각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74년 신춘문예로 시인, 소설가로 동시 등단한 후 70~80년대 민중문학 진영의 대표적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는 90년대 장편 (1996) 등을 발표하며 또다른 개성적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장편소설 (2000), 단편집 (2003), 시집 (2006)을 내며 느긋한 걸음을 걷고 있다. 그가 1997년 인도, 미얀마를 시작으로 3년 간 구도(求道)여행을 했던 일은 그의 문학에 새로운 깊이를 더한 사건으로 지금도 문단에 회자되고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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