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와 공존. 뮤지컬 ‘서편제’의 총괄 음악감독을 맡은 김문정씨는 그 음악적 포인트를 두 단어로 함축했다. 어울리지 않는 것과 어울리는 것이 함께한다는 의미였다.
14일 막을 올린 ‘서편제’는 음악뿐 아니라 극 전체가 분리와 공존이었다.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독립적으로 살아있으면서도 매끄럽게 조화를 이룬 것이다. 한때 공연계에서 유행하던 ‘전통의 현대화’는 국악기로 현대음악을 연주한다든가 하는 물리적 결합에만 초점을 두는 바람에 전통도 훼손하고 대중에게서도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여 사람들은 작가 고 이청준의 소설 를 뮤지컬로 만든다는 소식에 기대보다 걱정을 먼저 했다.
그러나 그냥 ‘창작 뮤지컬’이 아닌 ‘한국 뮤지컬’을 표방하고 나선 ‘서편제’는 이 같은 걱정을 단숨에 날렸다. 음악, 춤, 무대, 의상 등 모든 부분에 전통은 그대로 살아있었고, 현대성을 드러내는 서양식은 오히려 우리 것을 돋보이게 했다. 특히 대중음악 작곡가 윤일상씨와 국악인 이자람씨가 함께 작곡한 곡들은 국악과 현대음악의 비중이 3대 7에 가까웠음에도 국악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관객은 전통 판소리를 비롯한 국악 넘버가 흐르는 장면에서 더 크게 웃고 울었다. 흰색의 한지만 일렁이는 단출한 무대는 가상공간을 연상시키는 영상이 채웠고, 살풀이춤 이수자인 남수정씨의 안무는 단편 무용을 극에 삽입한 듯 완성도가 높았다.
큰 줄거리는 1950년대 전후가 배경인 소설을 그대로 따랐다. 다만 소리꾼 아버지와 소리를 받느냐 마느냐를 놓고 갈등을 빚는 아들 동호는 대중음악가를 꿈꾸는 캐릭터로 변경, 극적 전개를 꾀했다. 그 덕에 ‘노란 샤쓰의 사나이’와 같은 익숙한 대중음악을 활용해서 소재의 무거움을 덜었다. 인과관계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도 이해에 무리가 없는 연출은 세련된 느낌을 줬다.
가장 돋보인 것은 평생을 소리꾼으로 살아가면서 이복동생 동호와 묘한 감정을 형성하는 송화였다. 이 역을 번갈아 맡은 이자람, 차지연씨는 창법이 전혀 다른 국악과 양악을 모두 소화해내야 했는데, 이씨는 국악인다운 맛깔스런 소리로 시선을 집중시켰고, 차씨는 다른 배우들과 조화를 잘 이뤘다. 반면 동호(김태훈)의 어색한 연기와 아버지(서범석)의 깊지 못한 소리는 못내 아쉬웠다. 버성긴 몸짓의 앙상블도 집중력을 해쳤다.
연출가 이지나씨는 “흥행의 보장이 없음에도 이 작품 제작을 지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 드리고, 사명감으로 뭉친 스태프들께 존경을 표한다”고 말했다. 작품의 통일성과 완성도만 생각하며 뚝심으로 밀고 나간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거칠었던 첫 무대에서 갈수록 진화해갈 이들의 마지막 무대가 궁금하다. 11월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02)703-2016
김혜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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