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용자가 매년 23배씩 급증하던 1994년. 미국에서 인터넷을 새로운 유통망으로 이용한 창업신화가 시작됐다. 미국 월가의 투자회사 디이쇼(D.E.Shaw)의 펀드 매니저이자 최연소 부사장이었던 제프 베조스(당시 30세)가 연봉 100만 달러의 직장을 미련 없이 포기하고 전자 상거래 사업에 뛰어든 것.
베조스가 시작한 사업은 인터넷에서 책을 파는 것이었다. 그는 서적 유통업체 잉그램이 있는 시애틀로 가서 자신의 집 차고에 회사를 차린다. 95년 출범한 이 회사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유통업체 아마존닷컴이고, 제프 베조스(46)는 2010년 포브스 집계 세계 43번째 부자(123억 달러)다.
미치광이와 최고의 CEO
베조스의 어머니는 10대때 그를 낳고 곧 남편과 이혼했다. 그 후 베조스가 5세 때 쿠바 출신의 이민자와 재혼했고 베조스는 그 아래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과학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 신동으로 불렸던 베조스는 과학영재학교를 다녔고, 차고를 실험실로 개조해서 쓰기도 했다. 프린스턴대 컴퓨터 공학과 졸업 직후 월가에서 주식거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을 하다 이후 펀드 매니저로도 일했다.
그러나 전자상거래의 잠재력에 마음을 뺏긴 베조스는 성공이 약속된 월가를 떠나 새 사업에 뛰어든다. 회사이름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강인 아마존강이 두 번째로 큰 강보다 무려 10배나 크다는 점에 착안, 경쟁사를 압도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은 꿈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사업초기,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이 사업에서 베조스는 10여명 남짓한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기발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고객이 인터넷을 통해 책을 주문할 때마다 벨이 울리도록 한 것. 하지만 사업이 대박을 치고 주문이 쇄도하면서 불과 몇 개월도 안돼 벨소리는 소음이 되었다. 벨소리가 나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바꾼 것은 당연했다.
96년 아마존닷컴이 월스트리트저널 1면에 특집으로 소개되면서 사이트도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아마존닷컴은 그 후로도 6년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베조스가 당장의 수익보다는 성장을 택했기 때문. 책만 팔던 것에서 벗어나 97년 CD, DVD 판매를 시작했고 소프트웨어와 장난감, 의류 등으로 계속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베조스의 벤처정신을 높이 산 타임지는 그를 ‘사이버 상거래의 왕’이라 부르며 99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하지만 2000년 IT버블 붕괴로 아마존닷컴 주가가 100달러에서 6달러로 곤두박질치고, 도무지 흑자를 낼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다. 한 가지 사업에 집중하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벌이는 아마존닷컴은 생존 여부조차 불투명하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한 언론인은 평소 큰 소리로 잘 웃어 특유의 웃음소리로 유명한 베조스를 ‘최악의 회사를 운영하는 낄낄대는 미치광이(chuckling maniac)’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1년 후 상황은 달라졌다. 2001년 4분기에 509만달러의 흑자를 낸 것이다. 베조스는 “우리의 사업 모델이 맞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며 그동안 쏟아졌던 비판을 일축할 수 있었다. 또 창립 10년째인 2004년에는 연매출 70억 달러로 세계 인터넷 상거래 1위 자리를 굳혔다. 미국의 경제지 포춘도 베조스를 ‘한번도 혁신을 멈춘 적이 없는 미래지향형 기업인’이라며 애플의 스티브 잡스에 이어 2010년 IT분야 최고의 CEO 2위에 선정했다.
또 다른 승부수
아마존닷컴의 성공비결로는 사업 다각화, 공세적인 저가 전략, 다른 사이트와의 활발한 제휴 등이 꼽힌다. 또 신용카드 결제 시 한번 정보를 입력하면 나중에 다시 입력할 필요 없이 쉽게 결제할 수 있는 ‘원클릭’ 기술, 고객별 구매 패턴에 따른 맞춤 정보 제공, 가격 비교, 책 본문검색 서비스 제공 등 지금은 일반화됐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이었던 아이디어와 정교한 경영전략도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
베조스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2007년 11월 전자책 ‘킨들’을 출시하며 두 번째 승부수를 던졌다. 킨들은 휴대폰 전화망에 접속해 언제 어디서나 책을 내려 받을 수 있는 접근성과 풍부한 콘텐츠를 무기로 10년 전부터 전자책을 만들어 온 일본업체들을 단숨에 제치고 세계 시장을 석권했다.
하지만 제2의 성공신화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상태다. 올 4월 애플이 태블릿PC 아이패드를 출시하면서 시장 판도가 요동 친 것. 아이패드는 출시 3개월 만에 330만대나 팔리며 지난 3년간 킨들의 누적 판매량(약 300만대)을 앞질렀다. 컬러 화면에 이메일, 동영상, 게임 등의 기능도 가미된 아이패드가 흑백 화면의 간단한 기능만 갖춘 킨들을 압도한 것이다.
하지만 베조스는 여전히 킨들이 최후 승자가 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는 “작가의 세계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테크놀로지가 자연스레 사라져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요컨대 독서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가장 비슷하게 재현한 킨들이 최첨단 디지털 매체인 아이패드를 이길 것이라는 논리다.
베조스가 전자책에서도 아마존닷컴 신화를 재현할지 지켜볼 일이다.
다음 주에는 2008년 미국 주택시장 붕괴를 예측해 200억 달러를 번 '헤지펀드의 대부' 존 폴슨을 소개합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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