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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개별자와 보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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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개별자와 보편자

입력
2010.08.20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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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일하던 전무가 갑자기 사표를 냈다. 엔지니어로서 20년 동안 성실하게 책임을 다해 왔기에 임직원들의 존경을 받아 왔다. 그의 헌신적 노력으로 우리 회사의 제조업 분야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흑자를 유지했다. 갑자기 사표를 낸 이유는 대표이사인 나에 대한 불신이 한 몫을 했다. 자신이 통솔할 수 없는 회사 전체의 경영 악화로 시작된 책임을 제조업 분야에서 감당하는 일을 막으려는 것이다. 고집을 꺾을 수 없단 걸 알고 환송 술자리를 갖기로 했다.

그가 사는 수원으로 가는 동안 마음이 이상하게 편해졌다. 함께 일하는 동안 단 한번도 편할 수 없었던 사회적 관계를 떨쳐 버리고 인간적으로 회포를 풀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그 동안 만나기만 하면 서로 다른 사회적 역할 때문에 다투어야만 했다. 내가 정말 괴로웠던 이유는 그를 존경했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평생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과 사회적으로 다툴 수밖에 없는 상황은 괴로운 일이다. 그가 나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역할을 이해한다. 그 역시 내 입장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날 술자리는 이별이 아닌 새로운 만남의 자리였다. 항공사 승무원을 준비하는 자신의 딸 이야기로부터 내가 새로 제작한 영화 이야기까지, 우리는 상대방을 향한 따뜻한 관심으로 긴 술자리를 가졌다.

사회적인 역할에서 나오는 판단과 그 사람 본인에게서 나오는 판단은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개별성과 보편성의 불일치이다. 이 둘은 공존하면서 때론 일치하고 때론 충돌한다. 개별성과 보편성을 구별하는 일은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할 때 매우 중요하다. 운동선수가 몸을 다쳐 더 이상 운동을 못한다고 해서 그 개인의 삶이 끝나지 않는다. 운동선수라는 보편성은 상실할 수 있어도 개인의 삶이 끝나지는 않는다. 사업에 실패했다고 자살을 한다면 사업이 자기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개별자는 인생의 과정에서 수많은 사회적 속성을 부여 받는다. 그 중 어느 하나의 사회적 속성만 가지고 개인의 삶 전체를 규정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

부분을 통해 전체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의 이해력이 가진 한계 때문에 불가피하겠지만, 우리는 독단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항상 생각하고, 하나의 사회적 속성만으로 모든 관계를 평가하고 이해하는 태도를 삼가야 한다. 진정한 관계의 뿌리는 개별성을 이해하는 데 있고, 개별성은 직업이나 지위와 같은 사회적 속성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인문학은 평생학습의 과정이지 학교 교육으로 끝나지 않는다.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뜻과 용도를 모르는 개념들을 머리 속에 쑤셔 넣는 일이다. 그 개념의 뜻과 용도가 이해되고 판단과 실행에 적용하려면 학교를 나와서도 한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인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인내심이다. 뜻과 용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을 머리 속에 집어 넣는 일은 참을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세월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특히 관습에 맞서고 불합리한 일들을 겪으면서 자신의 정신적인 생존을 지켜가다 보면 마음 속 어딘가에 박혀 있던 개념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들며 깨달음을 가져 온다.

철학에서 배운 개별자와 보편자의 구별은 나에게 그 중 한가지 사례이다. 20년간 엔지니어라는 보편성의 규정을 벗어버린 전무의 인생이 하나의 개별자로서 어떻게 흘러갈지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조성우 영화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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