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더운 여름이다. 8월 중순이 지났는데도 더위는 여전하다. 유난히 뜨겁게 달궈져서인지 여름의 퇴장도 늦어질 것이라고 한다. 방학은 끝나가지만 여름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끝나지 않는 여름 속으로 떠났다. 휴가 피크 시즌을 벗어나 한결 한가로워진 여름여행이다.
청평호가 품은 북한강가에 호젓한 모래톱이 있다고 해 찾아갔다. 홍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이다. 두 물이 부딪쳐 꼭지점을 이루는 지점에선 유속이 한없이 느려진다. 두 강이 실어내는 모래는 그곳에 쌓여 조금씩 모래톱을 이뤄간다.
보트를 빌려 타고 그곳에 가보았다. 보트에서 내리니 물 깊이는 무릎 정도도 되지 않았다. 깊고 유속이 세기로 이름난 북한강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일부 모래톱은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모래에 박힌 까만 자갈 같은 게 보였다. 건져보니 조개들이다. 홍합만큼 컸다.
수심도 깊지 않고 물살도 세지 않아 어린 아이들 물놀이 하기엔 그만이다. 아예 테이블에 파라솔까지 공수해와 한강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옆을 스치는 수상스키의 하얀 포말이 부챗살처럼 펼쳐지며 한낮의 더위를 식혀준다.
모터보트를 태워준 이들이 지금부터는 수상스키를 타고 가잔다. 수상스키는 처음이다. 보트를 타고 오기 전 잠깐 받은 지상교육이 전부였다. 물 속에서 스키를 신고 기다렸다. 역시나 몸은 경직됐다. 지상교육을 받을 때 강사로부터 몸이 왜 그리 뻣뻣하냐며 구박도 받았기에 더욱 긴장됐다.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그 때 배웠던 것을 떠올렸다. 팔은 절대 굽히지 말고 쭉 펴라. 발목은 힘주어 꺾어 스키가 물 속으로 처박히지 않도록 한다. 끄는 힘에 몸을 맡겨야지 절대 힘주어 손잡이를 잡아당기지 말아라. 머리에 떠오른 이 세가지를 되뇌면서 “고(Go)”를 외쳤다. 보트가 천천히 달려나갔고 줄이 팽팽해지는 순간 손끝에 그 힘이 전달됐다. 물보라가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를 유지했다. 순간 물 위를 가르고 있는 내 몸뚱이가 느껴졌다. 단번에 뜬 것이다. 보트를 몰던 강사도 놀란 듯 쳐다본다. “저 몸치가 어떻게 떴지” 하는 표정이다.
보트 속도에 익숙할 즈음 몸을 조금씩 펴며 섰다. 스스로 대견해 입가에 미소가 번질 즈음, 역시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보트 속도가 조금 빨라지자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균형이 흐트러졌고 몸은 물 속으로 곤두박질 쳤다. 세 번을 더 물살을 가르고는 더는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을 것 같아 그만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가만히 서서 물을 타는 수상스키가 뭐 힘든 일일까 했는데 몸의 피로도가 상당했다. 완벽한 자세는 익히지 못했지만 분명 물 위를 갈랐다는 그 사실 하나에 크게 만족했다.
일행들의 수상스키 체험을 다 끝낸 후 보트는 청평호 유람을 떠났다. 맑은 호수가 품은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의 뱃길 여행이다. 서울서 가까운데다 청정의 자연을 품고 있으니 누군들 탐이 나지 않았을까. 강가엔 예쁜 별장들로 가득했다. 이 별장은 A그룹 회장, 저 별장은 B그룹 회장 거란다. 웬만한 대기업 회장들의 별장은 이곳에 다 모여 있는 듯했다. 유력 정치인과 종교단체까지 나서 청평의 요지들을 싹쓸이 했단다. 그러고 보니 청평호 주변 한적한 지방도로에 유독 고가의 외제차들이 많이 내달렸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강변에는 새로 타운하우스를 크게 짓는 공사도 한창이다. 청평의 물은 여전히 맑고 푸르기만 한데 주변엔 그 청평을 가지려는 자들의 욕심들로 가득했다. 보트의 속도를 높였다. 요지경 같은 청평호지만 바람만큼은 시원했다.
가평=글ㆍ사진
■ 여행수첩
청평댐에서 남이섬 들머리에 이르는 길은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수도권에서 46번 경춘국도를 타고 가다 청평 못미처, 청평댐 쪽으로 호명리 팻말을 보고 우회전하면 363번 지방도, 75번 국도를 번갈아 타며 호수를 끼고 달리면 남이섬 들머리까지 이르게 된다.
청평호반엔 수상레저 업체들이 성업 중이다. 수상스키·웨이크보드·플라잉피시 등 수상레저를 즐길 수 있다. 최근 금대리 쇠터 앞 강변에, 가족 단위 체험객을 대상으로 새로 문 연 클럽 레벤(레벤 하우스)의 수상스키 전문강사 박정수(대한수상스키협회 이사)씨는 “청평호 중에서도 금대리 일대는 깨끗한 물과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라며 “전문강사의 지도로 초보자도 쉽게 수상스키·웨이크보드 등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상스키 초보자 2회(강습 포함) 6만원. 경험자는 1회 2만원. 플라잉피시 1회 2만5,000원, 바나나보트 1인 1만5,000원, 땅콩보트 2만원. (031)581-1132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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