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근로자들에 대한 원청사의 사용자적 책임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협력업체에 대한 원청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부의 정책기조가 맞물려 도급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이번 여름에는 울산 포항 여수 등에서 플랜트 건설노조의 파업이 진행되면서 해묵은 건설 도급노동의 불안정성도 다시 드러나고 있다. 근본적 해법을 찾지 못하고 반복되거나 확대 재생산되는 도급노동의 모호한 사용자적 책임에 따른 갈등과 혼란은 앞으로도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될 것이다.
원청업체 사회적 책임 커져
도급 노동, 특히 원청사 사업장에 들어가서 원청기업 근로자와 같이 일하는 사내 하청 노동은 법적으로는 원청사가 지휘감독을 행사하지 않는 한 불법이 아니지만 현실에서 이런 구분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노사 관계와 갑을 관계가 교차하면서 원청과 하청사 모두가 사용자적 책임으로부터 멀어지는 관성을 낳는다. 더욱이 효율성 제고의 관점이 아니라 비용전가의 관점에서 도급 노동에 의존하는 한 당연히 양자 모두 위법하지 않는 한 사용자적 책임을 외면하고 싶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 선진국들은 법을 넘어서 원청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윤리강령(code of conduct) 운동에서는 다국적 기업과 제3세계 하청 노동간에 사회적 책임이 존재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우리는 단지 상품을 주문했기에 개도국 하청의 노동현실에는 책임이 없다고 버티던 몇몇 다국적 기업들은 도덕적 불감증을 규탄하는 불매운동을 겪으면서 하청 노동에 책임을 나눠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올해 말 나올 ISO 26000이라는 국제 상거래상의 사회적 책임기준에도 하청 노동 보호에 원청 기업도 책임이 있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그런데 선진국들의 도급 노동은 수평적 계약관계와 산업별 최저기준에 관한 노사협약에 의해 규율되는 것이 보편적이어서 차별과 착취의 가능성이 적다.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의 팍스콘 공장 사례처럼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저비용 도급노동이다. 반면에 우리는 국내에서 도급 노동이 붐을 이루고 있다. 이 경우 원ㆍ하청 근로자간에 사회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비교되거나 접촉빈도가 많을 수밖에 없고, 계약 질서가 아닌 신분 질서에 의해 자신의 노동이 규제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부 업종에서는 힘든 일은 사내 하청 근로자가 하고 원청 근로자는 쉬엄쉬엄 일하는 풍조가 남아있다.
이제 한국의 사용자들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노조 전임자 임금은 더 이상 사용자에 기대지 말고 노동운동 스스로 당당하게 책임지자는 사회적 합의정신에 비추어 보면, 이제는 사용자도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사용자적 책임을 덜기 위해 도급 노동에 의존하는 한 한국의 공정 노동질서는 여전히 부실한 토대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약 수익성에 지대한 영향을 줄 정도로 임금수준이 높아서 싼 도급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자사의 노조에 당당하게 이를 시정하자고 제의하는 것이 정직한 해법일 것이다.
하도급 구조부터 정비해야
결론적으로 도급 노동을 줄이고 직접 고용을 늘리기 위해 몇 가지 사회적 목표가 필요하다. 우선, 경쟁적으로 잘게 나눠지고 다시 2차ㆍ 3차로 한없이 늘어진 하도급 구조를 정비해야 한다. 3차는 2차, 2차는 1차, 1차는 원청이 상당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향으로 상생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원청과 하청노동의 임금과 근로기준 격차를 합리적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원청사 노조의 협조 행동이 나와야 한다. 소속기업의 지불능력 차이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원청이 적정 임금수준과 격차에 대한 관심을 두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직접 고용이 늘어난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에 대해서는 각종 행정적ㆍ 재정적 지원을 강화해 주어야 한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