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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샌델, 이번엔 생명윤리를 건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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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샌델, 이번엔 생명윤리를 건드리다

입력
2010.08.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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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정의론' 신드롬을 몰고 온 <정의란 무엇인가> 의 저자 마이클 샌델의 방한에 맞춰 출간된 이 책은 유전공학 시대에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들을 다룬다. 원제('The Case against Perfection')에서 드러나듯이 샌델은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완벽함을 추구하는, 이른바 유전학적 강화(genetic enhancement)에 대해 반론을 펼친다.

생명윤리니, 강화니 골치 아픈 단어들이 등장한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 가 독자들을 매료시킨 한 요인인 저자의 '화술'은 이 책에서도 빛난다. 이 책 역시 하버드대에 개설됐던 관련 강의가 바탕이 됐는데, 저자는 실제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이나 충분히 있음직한 사례 등으로 질문을 던지고 반론에 반론, 또 반론을 이어가며 문제의 핵심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일례로 청각장애를 장애가 아닌 정체성으로 믿는 청각장애 레즈비언 커플이 청각장애를 가진 아이를 갖기 위해 장애인 정자를 구하는 것과, 불임부부가 똑똑한 아이를 얻기 위한 난자 공여자로 키 175cm 이상에 튼튼하고 날씬하고 SAT 성적 1,400점이 넘는 하버드대 여학생을 찾는 행위(실제 있었던 일이다)의 도덕적 차이는 도대체 무엇이냐는 물음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유전학적 강화나 인간복제 등에 반대하는 이유로 흔히 드는 것이 인간의 자율성 침해나 공정성 훼손이다. 그러나 샌델은 자율성이나 공정성은 "부모가 자녀의 유전자까지 디자인하게 될" 시대가 낳을 심각한 윤리적 문제들을 해결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예컨대 인간의 재능은 운이 좌우하는 '유전학적 제비뽑기'의 결과이고 부모는 물론 자녀도 자신의 유전형질을 골라 태어날 수 없는 만큼 자율성에 근거한 반론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한 운동선수의 근육 강화나 아이들 키 늘리기, 성(性) 감별 등에 반대하는 공정성 논리도 만약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모두가 이런 혜택을 누린다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가는 물음 앞에서는 힘을 잃고 만다.

샌델은 대안으로 생명을 '주어진 선물'로 인정할 것을 주장한다. 재능을 유전적 제비뽑기의 결과로 그대로 두자는 것이다. 재능은 노력의 결과가 아니므로 전적으로 우리의 소유가 아니며,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의 욕구에 따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만 유전공학을 질병 치료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오용하는 '프로메테우스적 충동'을 자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명윤리를 다룬 책이지만, 오히려 자녀를 둔 부모에게 필독을 권하고 싶다. 특히 지나친 걸 알면서도 '학원 뺑뺑이'를 강요하는 부모라면, 자녀를 최고로 키우기 위해 걸음마를 떼기도 전부터 온갖 교육과 훈련을 시키는 부모와 같은 이유로 유전공학을 이용하는 부모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샌델의 도발적인 질문, 부모의 사랑은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과 더 낫게 '변화시키려는' 사랑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신학자 윌리엄 메이의 가르침 등을 꼭꼭 씹어가며 생각해보라.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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