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쌀농사는 대풍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만성적 수급불균형으로 그만큼 재고도 늘어날 것으로 보여, 풍작의 기쁨 보다는 쌀값 하락을 더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농림수산식품부 고위 관계자는 18일 "올 우리나라 여름 날씨가 2, 3모작을 하는 동남아지역의 날씨처럼 무덥고 강수량도 많아 벼의 영양생장이 좋다"며 "앞으로 큰 기상 이변이 없는 한 올해 벼농사도 대풍년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영양 생장은 벼의'그릇'키우기에 비유되는 성장으로, 그릇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많은 쌀이 생산되게 된다.
실제 벼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조건도 좋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식량과학원에 따르면 올해 8월 15일까지의 평균기온이 평년(최근 30년 평균) 기온보다 0.3도 높은 13.5도, 강수량은 11% 많은 973mm를 기록했다. 다만 일조량은 1,193시간으로 평년의 79% 수준에 머물렀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일조량은 벼의 몸통 생장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며 "이삭이 패고 난 뒤부터 일조량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이변이 없는 한 올해 쌀 생산량도 평년 수준 이상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수확량이 다른 품종보다 20% 가량 많은 '호품벼'재배면적이 크게 늘어난 것도 올해 풍작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호품벼는 밥맛이 뛰어나면서도 생산량이 높아 농가의 인기를 끌고 있는 품종. 2008년 1만400ha에 그쳤던 재배면적은 지난해 8만2,000ha로 급증했고, 올해는 15만4,400ha로 증가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일반 품종은 ha당 5톤 가량의 쌀이 생산되는데 호품벼는 6톤이 나온다"며 "호품벼 보급 확대로만 올해 10만톤 가량의 쌀이 더 생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재고는 더 늘어나고 이로 인한 쌀값 하락압력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올 쌀 재고량은 이미 적정수준(72만톤)의 두 배에 달하는 140만톤. 만약 금년 수확량이 평년 수준(456만톤)에 머물더라도 30만톤 정도의 재고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만약 대풍을 기록한다면 내년 재고량은 200만톤에 육박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장 쌀을 보관할 창고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당장 다음달부터 조생종 벼 수확이 시작되는 만큼 창고 보관 압박이 커지고 있다"며 "창고가 모자랄 가능성에 대비해 각 시ㆍ도에 추가 창고 확보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가 추가로 거둘 수 있는 양은 공공비축미 물량인 34만톤 수준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야적도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정부는 다양한 쌀 소비촉진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는 나지 않는 상태. 여기에 조기 쌀 관세화도 물건너가는 분위기여서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압력은 점점 더 거세질 분위기다. 한두봉 고려대 교수는 "소비를 촉진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 이젠 풍년이 마냥 기쁠 수만은 없다"며 "쌀 수급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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