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인 효민(15·가명)이는 예고에 들어가 무용을 전공할 생각이다. 매일 한 마리 백조가 돼 세계 무대를 누비는 꿈을 꾼다. 춤추는 게 마냥 좋은 아이는 그러나 올해 들어 일주일에 두 시간 있는 미술수업이 악몽 같다. 미술교사가 "머리를 단정히 깎지 않으면 넌 내 수업 들을 필요도 없어, 나가 있어"라고 지시하기 때문이다. 교실 밖에 우두커니 선 채 속으로 몇 번이고 울었다. 그리고 고민했다. '선생님의 요구대로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야 하나.'
학교에서 내세운 두발 규정이 한 아이의 꿈에 생채기를 내고 있다. 아이는 올해 1학기 내내 미술시간에 교실 밖으로 내몰렸다. 효민이는 수업을 못 듣는 고통보다 더한 교사의 막말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담당교사는 "머리 기르면 다 예고 들어가나" "돈 10만원만 내고 무용학원 다니면 다 가겠네" "너같이 시늉만 하는 애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겉멋만 든 너 같은 애들 내가 잘 안다" "그림은 신문지 깔고 바닥에 앉아 그려" 등의 폭언을 계속했다.
효민이는 그때마다 예고 입학을 위해 각종 무용대회에 나가야 하는 사정을 설명했다. 더구나 입시 전 마지막 무용대회의 '컨셉트'가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무대를 누비는 것이었다. 효민이는 "다른 선생님들은 다 인정해줬다. 지난 2년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유독…"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해당 교사는 철저한 원칙을 내세웠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두발 규정에 예외는 없다는 것. 그는 "내가 너 얼마든지 퇴학을 시킬 수 있는데, 인생이 불쌍해서 그냥 두는 거다. 벌점을 주지 않는 것 자체를 고마워해라"고도 했다. 벌점이 15점 이상 되면 각종 입시에서 불이익을 받는 터라 효민이는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6월 등과 허리 사이까지 3년이나 곱게 기른 머리를 잘랐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부모가 학교를 찾았다. 설명을 듣고, 아이의 상황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교사로부터 들은 건 욕설뿐이었다. "이 XX야. 넌 나이가 몇 살이나 처먹었어" "개XX들"…. 교감실에서 2시간이나 기다린 뒤 나타난 교사가 다짜고짜 손짓을 하며 "미술실로 가자"고 퉁명스런 태도를 보이자 순간 감정이 격해져 고성이 오가면서 비롯된 일이었다. 효민이의 아버지는 "서로 감정적으로 싸운 건 인정한다. 하지만 교사라는 사람이 부모에게 이 정도라면 딸한테 어떻게 했을지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효민이가 머리가 길어서가 아니라 단정하게 묶지 않고 다녀 지적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교내 규정에 따르면 예능 특기자는 학교장의 허락 하에 머리를 단정하게 묶는 조건으로 머리를 기를 수 있다. 하지만 효민이와 부모는 그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결국 부모는 교육청에 진정을 냈고, 학교는 20일 학부모조정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학교장이 추천한 의사, 변호사 등 외부 인사 포함 7명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다.
효민이는 다음달 4일 그렇게 기다렸던 무용대회에 나선다. 입시 전 마지막 기회다. 그는 "보란 듯 좋은 성적으로 선생님에게 인정받겠다"고 했다. 두 달 전 짧게 자른 그의 머리엔 찰랑이는 진짜 머리카락 대신 가발이 씌워 있을 것이다. "학교가 아이의 꿈을 그렇게 무시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은데,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아요." 효민이 엄마는 아이의 개성을 무시하고 획일적 원칙만 내세우는 교육 현장과,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큰 상처를 준 교사의 막말에 절망했다고 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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