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모든 것이 환영이고 환상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올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엉클 분미'를 들고 한국을 찾은 태국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40) 감독은 작품의 주된 메시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엉클 분미'를 개막작으로 18일 막이 오른 제4회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의 레드 카멜레온 부문 심사위원을 맡았다.
위라세타쿤 감독은 이날 오후 서울 CGV압구정에서 '엉클 분미' 시사회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내 작품이 개막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디지털영화제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이 영화가 영화적 변화를 탐색하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엉클 분미'는 예술영화와 장편영화의 조화를 시도한 작품이다. 어느날 갑자기 아내의 유령과 실종됐던 아들을 마주 친 한 노인을 통해 태국의 현대사와 신화를 이야기하는 전위적인 영화다. 위라세타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내가 태어났지만 진지하게 탐구해본 적이 없는 태국 북동 지역의 풍경을 가장 충실하게 담아내고자 했다"며 "내가 살던 곳 근처에 있던 수도원의 수도승이 쓴 책을 읽고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에게 영화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영혼이나 환생과 같은 의미다. 그는 "어린 시절 태국에서 자라면서 신화, 믿음, 유령, 환상 같은 것에 사로잡혔다"며 "신체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영화도 나에게는 같은 의미"라고 했다. 그는 '엉클 분미'가 "정직하고 단순한 영화에 대한 헌사"라고도 했다. 자신을 감독으로 성장시킨 영화들이 "죽거나 죽어가고 있다"고 표현한 그는, 그래서 "촌스럽지만 전통적인 이야기 전개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한 필름에 20분밖에 담을 수 없는 35mm 카메라로 영화를 만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두 시간 동안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 복잡한 플롯과 이야기를 다루는 반면 위라세타쿤 감독은 영화 안에서 장르적 다양성을 시도했다. 그는 "20분짜리 필름이 담긴 릴 6개마다 각각 다른 장르의 색깔을 보여주려 했다"고 소개했다. 한 편의 영화에서 자신만의 전통적 스타일과 더불어 제한된 앵글과 강한 조명을 이용한 TV드라마, 점프 컷이 많은 다큐멘터리, 태국의 TV 프로그램 형식인 로얄 코스튬 드라마 등 6가지 스타일을 추구했다는 것. 그는 그 때문에 각 장르마다 달라지는 배우의 연기를 지도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엉클 분미'는 정치적 비유도 담고 있다. 그는 "원숭이 유령이 숲으로 떠나는 것은 폭력적인 정부와 군대가 한 마을을 몰살시키려 했고 사람들이 숲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던 태국의 역사를 비유한 것"이라고 말했다.
위라세타쿤 감독은 2004년 영화 '열대병'으로 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심사위원상을 받았으며, 2002년에는 '친애하는 당신'으로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받았다. 2006년작 '징후와 세기'는 태국 영화 중 처음으로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국제여론조사 결과 지난 10년간 최고의 영화로 꼽히기도 했다. 2005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의 프리마켓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20일 한국 관객들과의 만남을 갖는 등 영화제 일정을 진행한 뒤 24일 출국을 한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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