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다. 2008년에 인구 10만명 당 자살률이 24.3명으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또한 최근 실시된 우리나라 성인 남녀 6,510명을 대상으로 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서도 15.2%가 평생 동안 한 번 이상 자살을 심각히 고민했다고 답했다.
최근 몇 년간 연예인과 사회지도층 인사, 특히 전직 대통령까지 자살해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사회문제가 됐다. 자살 원인과 그 정신역동학적 분석은 필자와 같은 응급의학과 의사가 언급할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자살을 시도해 주변인이나 119구급대에 의해 발견돼 병원에 처음으로 실려오는 곳이 응급실이라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자살에 대해 할 말이 있다.
앞서 언급한 자살률은 자살을 시도해 사망한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자살미수까지 합치면 그 빈도는 크게 늘어난다. 필자를 포함한 응급의학과 의사는 응급실에서 자살을 시도한 사람을 자주 접하게 된다. 어떤 방법으로 자살하려 했건 적극적으로 치료해 신체상태가 안정되면 응급실에서는 정신과에 협진을 의뢰하게 된다. 한번 자살하려 했던 사람은 언제든지 다시 시도할 수 있고, 두 번째 시도할 때는 아주 확실한 방법을 택하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도 이런 경우를 흔히 봐 왔다.
그런데 문제는 환자 스스로가 정신과적 치료를 거부하거나, 보호자가 환자의 자살 시도를 일종의 해프닝으로 생각해 정신과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아주 흔하다. 자살을 하나의 병으로 보지 않고 단지 적응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 하는 즉흥적인 행동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편견이 자살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길게는 두세 달 전, 짧게는 한두 주 전부터 이상신호를 보인다. 자신의 정신상태가 불안해지고 죽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생각되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때 도움을 요청 받은 사람의 태도에 따라 환자의 자살을 막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필자는 몇 달 전 자살한 젊은 직장인을 본 적이 있다. 그때 그 연락을 받고 응급실로 달려온 망인(亡人)의 친구가 울먹이면서 한 말을 기억한다. “두 달 전쯤 집안문제로 많이 힘들다며 만나서 이야기나 하자던 친구 말이 지금 이제야 와 닿네요. 그 때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습니다.”
자살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준다. 망인을 사랑했던 가족과 친지, 친구, 심지어 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지인까지 심리적 공황상태를 만든다. 이런 충격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변 여건 때문에, 혹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내 상황 때문에 극한 선택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살한 뒤 응급실에서 싸늘한 주검이 됐을 때 주위에서 슬픔과 충격에서 몸부림치는 가족과 친지, 친구, 직장동료 등을 한 번 상상해 보라.
송형곤 삼성서울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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