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찾아간 대구 북구 노곡동. 한달 만에 두 번이나 침수피해를 입은 이 곳은 피난민촌이나 다름없었다. 경부고속도로 다리 밑 금호강 주변 저지대인 이 동네는 배수작업이 끝났는데도 쓰레기더미와 진흙범벅이 된 가구, 가전제품, 물에 흥건히 젖은 차량들이 널브러져 엉망진창이었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보건소 방역차량이 동네를 돌고 있었고, 적십자사 관계자들이 피해 주민들과 현장 작업자들에게 물과 음식물 등을 나눠주고 있었지만 주민들은 진흙투성이의 가재도구를 수돗물로 씻어내다가도 울화통을 터뜨리는 등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주민 김복희(43ㆍ여)씨는 “지난달 침수피해를 입어 옷가지와 가전제품, 가구를 몽땅 새로 장만했는데, 한달 만에 다시 똑같은 피해를 당했다”며 “말로만 ‘미안하다’는 대구시의 수해대책에 기가 막힐 뿐”이라고 말했다.
노곡동은 지난달 17일 집중호우로 건물 72세대와 차량 등이 침수되는 피해를 입은 데 이어 지난 16일 오후4시40분께도 주택과 상가, 공장 등 60여세대와 차량 30여대가 갑자기 불어난 물에 잠기는 악몽이 되풀이됐다. 유치원생과 주민 31명이 고립됐다 구조됐고, 4명은 쇼크로 병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대구시와 북구청은 이번 침수 원인이 한달 전과 같은 배수펌프장 하자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펌프로 유입되는 물로부터 나무와 쓰레기 등 부유물을 걸러주는 제진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물난리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북구청 관계자는 “한달 전 배수펌프장 고장 때문에 이번에는 담당 직원이 상주하면서 제진기를 작동했지만, 플라스틱과 나뭇가지가 끼면서 작동이 멈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구시의회와 북구의회도 공동으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특히 시의회는 이날 건설환경위원회 소속 의원 3명으로 침수피해 조사소위원회를 구성, 다음달 16일까지 피해 원인 조사와 노곡동, 조야동 배수펌프장 설계, 시공, 감리 과정의 문제점, 공사 설계하자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불ㆍ탈법이 드러나면 고발 등 민형사상 책임을 묻기로 했다.
경찰도 침수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배수펌프장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한달 전 침수 때는 펌프장에 관리자가 없어 제진기가 작동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근무자가 제진기를 정상 작동했는데도 불구, 제진기 모터의 안전장치인 시어핀이 파손된 점으로 미뤄 제진기 도입 과정과 배수시설의 설계과정에 하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감리회사 관계자와 담당 공무원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전문가들에게 감정을 의뢰하는 한편 ‘자연재난 표준행동 매뉴얼’을 입수, 매뉴얼 준수여부도 조사키로 했다.
하지만 이날 사고는 김범일 대구시장이 한달 전 침수 피해 주민들에게 공개사과와 함께 재발방지를 약속한 후 발생, 탁상행정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시는 이날 침수 사고가 발생하자 공무원 300여명을 현장에 긴급 투입, 3시간여 만에 배수 작업을 완료했다고 밝혔지만 노곡동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데는 시일이 꽤 걸릴 전망이다.
주민 김영준(44)씨는 “한달 전 침수 때보다 50㎝나 높은 2㎙정도의 물이 차올라 왔다”며 “대구시의 재발 방지 약속은 모두 헛소리에 불과했고, 주민들은 어처구니 없게도 두 번씩이나 오물을 뒤집어썼다”고 울먹였다.
시 관계자는 “정확한 사고 원인이 드러나면 배수펌프장 시공, 감리업체 등을 대상으로 책임을 물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강석기자 kimksu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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