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외국 불교학자들 국내 불교 선원 탐방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외국 불교학자들 국내 불교 선원 탐방

입력
2010.08.17 12:06
0 0

“서양 철학의 많은 부분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서 나왔는데. 이 질문이 불교에서 말하는 ‘화두’와 연관이 있다고 보는지요?”(로버트 샤프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

“서양철학은 나를 인정한 상태에서 내가 누구인지 묻기 때문에 차이가 있습니다. 화두에선 ‘나’라는 그 전제를 의심합니다. 나는 깎아놓은 얼음처럼 햇볕에 두면 시시각각 녹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없는 나’와 ‘있는 나’를 초월하는 의심을 하면 화두로 가는 거죠.”(혜국 스님)

지난 14일 낮 충주 금봉산 중턱에 자리잡은 사찰 석종사의 법당 천척루. 불교에 정통한 학자들이건만 벽안(碧眼)의 그들은 한국의 선지식(善知識)에게 물어볼 게 많은 듯했다. 1시간여의 대화는 예리한 질문과 막힘 없는 대답으로 찰나처럼 지나갔다. “일상생활 속의 의심과 간화선의 의심은 차이가 있는지” “수행 과정에서 드는 의심과 스승에 대한 신심(信心)은 어떤 관계를 맺는지” 등 묵직한 질문에서부터, 수행자들의 하루 일과나 수행시간, 좌선 자세 등 디테일한 부분까지 망라됐다.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사로 꼽히는 혜국 스님은 예전에 공부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던 수행의 여정도 털어놨다. 장좌불와(長坐不臥)에 들었다가 하도 조는 바람에 성철 스님을 찾아가 “스님은 정말 존 적이 없느냐”고 물으니, “야 미친 놈아! 내가 목석이냐, 안 졸게”라는 호통을 들었다는 것. 스님은 그 뒤 언젠가 아예 죽을 각오로 유서를 써 놓고 입정(入定)했다가 체험한 깨침의 한 순간도 소개했다. 물이 담긴 발우를 머리에 이고 좌선해서 석양을 보곤 잠깐 뒤 눈을 떠 보니, 해가 동쪽에 떠 있더라는 것. 깜짝 놀라는 통에 발우가 떨어지며 ‘땅’ 소리를 냈고, 그 순간 신심과 의심이 하나가 됐다고 한다. 스님은 “이를 설명하자면 긴데, 알고 싶으면 머리 깎고 들어오라”고 했고, 질문을 했던 제임스 랍슨 하버드대 교수(그는 민머리였다)가 “저는 깎을 머리가 없어서…”라고 응수하자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10여년 전만 해도 폐사지였다가 혜국 스님의 공력으로 중부권의 대표 수행도량으로 우뚝 선 석종사를 둘러본 일행은 카메라로 아름다운 풍광을 담기에도 바빴다. 샤프 교수는 “한국에서 선불교가 매우 생생하게 살아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날 석종사를 찾은 이들은 동국대 불교학술원이 13~14일 동국대 중강당에서 개최한 간화선(看話禪)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서구의 불교학자들. 동국대 불교학술원장인 로버트 버스웰 미국 UCLA 교수를 비롯해 샤프 교수와 랍슨 교수, 할보 아이프리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윌리엄 보디포드 UCLA 교수 등 외국 학자 7명과 국내 학자 및 불교학술원 관계자 등이 동행했다.

이들은 선불교에 일가견을 가진 학자들이지만 버스웰 원장을 제외하면 모두 중국, 일본 불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땄다. 한국 불교계는 한중일 3국 중 선불교의 전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제대로 수행하는 곳은 한국밖에 없다고 자부하지만, 세계 학계에서는 여전히 아웃사이더 신세. 선(禪)의 영어 표기도 한국식 표기인 ‘Seon’ 대신 일본식 발음인 ‘Zen’이나 중국식 발음인 ‘Chan’으로 통한다. 이번 학술대회의 취지는 바로 한국 불교 간화선의 세계화를 위해 서구의 저명 불교학자들을 초청해 간화선을 이해시키려는 것이다. 특히 주최측이 중점을 둔 것은 학자들과 선 수행자들과의 만남이다. 이를 위해 학술대회에서 고우 스님, 혜국 스님, 수불 스님 등 대표적 선사들이 수행의 역사와 방법 등에 관해 발표한 데 이어 외국 학자들이 2박 3일간 한국 선방을 직접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이들은 이날 석종사에 이어 조계종 종립특별선원인 문경 봉암사로 이동해, 적명 스님과도 1시간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적명 스님은 남방불교의 위파사나 수행과 한국의 간화선 수행을 비교하면서 수행자들의 내밀한 체험 과정을 단계별로 세세하게 설명해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을 두 번째 방문했다는 랍슨 교수는 “한국 간화선에 대해 이해가 부족했는데, 이틀 간의 학술대회와 이번 방문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됐다”며 “특히 스님들이 간화선을 참선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아주 정확하게 보여줘서 매우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충주ㆍ문경=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