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흥행 보증수표로 친서민정책 만한 게 없다. 서민들이 자신들의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보듬어주는 정권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기에 역대 정권들은 하나같이 집권 중반을 넘어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면 전가의 보도처럼 이 정책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처음에 반짝 재미를 봤는지는 몰라도 막판까지 이를 관철한 정권은 찾아보기 어렵다. 막대한 재원과 포퓰리즘 시비, 기득권층의 반발, 정권의 정체성 논란이 겹치면서 동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서민의 진정성 의심스러워
이명박 대통령도 지금까지는 친서민정책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듯하다. 6월 지방선거 즈음 40%에 불과했던 지지율이 친서민 행보 강화 후 급상승해 50%를 넘나들고 있다고 한다. 이 정책을 임기 말까지 끌고 가기만 하면 정권 재창출은 문제없어 보인다. 정권말기 민심 이반이니 레임덕이니 하는 것도 걱정할 까닭이 없다.
친서민은 기본적으로 진보의 의제다. 보수정권이 진보가 제기할 이슈를 선점하고, 서민들이 박수를 치는 데 거칠 것이 무엇이 있나 싶다. 민주당이 '30대 친서민정책'을 발표하며 맞불을 놓는 것도 그 다급함의 반영이다.
관건은 진정성이다. 친서민정책이 지방선거 패배 뒤 떨어진 인기를 만회하기 위한 정치적인 책략이 아니라 서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절절히 느낀 데서 비롯됐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정성을 확인하는 잣대는 이 정책을 정권 말까지 꾸준히 유지해나갈 의지와 내적 역량이 있느냐이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자꾸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대통령과 정부 부처 장관들이 대기업 나무라는 얘기를 몇 마디 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보수세력은 "대기업 때리기다" "좌파 포퓰리즘이다" 며 난리법석이다. 더 웃기는 일은 재계와 보수세력이 반발하자 즉각 "시장 친화적인 방법으로 풀어가겠다"며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시장 친화와 친서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은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과욕임을 모르지는 않을 터인데 말이다.
개각에서 위장전입과 탈세 등 자질과 도덕성에 흠결 있는 인사들을 내세운 것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이런 반서민적 악취를 풍기는 인물들을 내세워 친서민정책을 추진한다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사실 이 정권에서 제시하고 있는 친서민정책은 엄밀히 말하면 민생을 책임진 정부라면 의당 해야 할 것들이다. 이런 것을 마치 엄청난 일을 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현 정권이 진짜 친서민을 하겠다면 서민들을 위한 몇 가지 응급처방만 내놓을 게 아니라 정책기조를 과감히 바꿔야 한다.
서민들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사교육비를 줄여주기 위해서는 경쟁과 서열 위주의 MB식 교육정책은 수정하는 게 옳다. 노조를 굴복시키려 하는 노동정책은 노사정간의 사회협약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부자들을 위한 감세 정책은 저소득층 감세 정책으로, 성장 제일주의는 성장과 분배를 조화롭게 병행하는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제대로 된 친서민정책으로 평가 받을 수 있다.
4대강 예산 일부 친서민으로
기조의 전환이 어렵다면 당장 손쉽게 현 정부의 친서민정책 의지를 국민들에게 인식시켜줄 수 있는 카드가 있다. 바로 4대강 사업이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4대강 사업은 홍수 예방을 위한 단순 치수사업인데, 당장 해결을 요하는 여러 현안 가운데 최우선 순위를 차지할 만큼 시급하다고 여기는 국민은 없다. 대형 국책사업일수록 5년이나, 10년 중ㆍ장기계획을 세워 적절한 예산범위 내에서 차근차근 해왔던 게 지금까지의 관례다. 만약 사업을 시급한 곳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한다면 내년까지 투입되는 22조원의 예산 중 일부를 친서민 정책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여론의 지지도 얻고 복지예산도 충족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가까운 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가는 이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