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여름 잡초가 자라기 시작하는 폐교에 한 무리의 연극집단이 당도했습니다. 운동장은 긴 장마로 곳곳에 물구덩이가 패였고 인적이 끊어진 교실은 빛바랜 느낌으로 스러져가고 있었습니다. 이 을씨년스러운 폐교에 젊은 연극인들은 침실을 마련하고 교실 두 개를 터서 연습장을 만들었습니다. 교장이 사용하던 관사는 춤꾼 하용부와 가족이 입주하였고, 저는 학교 관리인이 사용하던 작은 방에 짐을 풀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젊은이들이 어슬렁거리며 논두렁을 걸어 다닐 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학교 옆 논에서 농사를 짓던 농부는 항의 방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밤에 불을 밝히고 떠들면 벼가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벼도 잠을 자야 하고, 빛과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대낮에 벌거벗고 춤추는 남자배우들을 보고 기겁을 하기도 했습니다. 선무도를 익히던 남자배우들이 즉석에서 펼쳐 보인 집단누드 연기가 비밀스런 양지 마을에 흥미로운 파장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래서 이장이 주재하는 마을회의가 열렸지요. “대낮에 벌거벗고 무슨 해괴망측한 짓인가 쫓아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고, “저건 예술이라는 거야! 우리 마을에 예술이 들어왔다”고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폐교에 둥지를 튼 연극집단은 이듬해 주말마다 공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극장도 객석도 없는 운동장 한 모서리 야외에서 주말마다 공연을 한 것이지요. ‘산 넘어 개똥아’라는 연극이었는데 배우와 가면과 인형이 같이 어울리는 연극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연극 구경 나들이를 시작합니다. 65세 이상 노년층은 무료로 하고, 일반인은 만원, 학생은 6,000원의 입장료를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어떻게 50명이 넘는 단원들이 먹고 살 수 있지? 밀양시로부터 얼마만큼 지원을 받았지? 라고 묻습니다. 사실을 털어 놓는다면, 저희 밀양연극촌 연극 식구들은 1999년 입주 이후 2010년 지금까지 밀양시를 위시한 행정 당국으로부터 단 1원의 운영비 지원도 받지 않았습니다. 마음 편하게 살면서 연극할 수 있는 작업 공간, 그 이상을 바라지 않았기에 그 어떤 지원도 간섭도 받지 않고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밀양연극촌 식구들은 전국으로 일하러 다녔습니다. 2000년 1월 1일 밀레니엄 부산 축제를 맡아 해운대와 다대포 양쪽에서 동시 진행을 했습니다. 그때 연출가 양정웅과 극단 여행자를 만났지요. 그들 또한 돈을 벌기 위해 단원 전체가 조명 일을 하고 있었고, 해운대 일출행사장에 조명 일하러 온 것입니다. 대구의 원로 연극인 고 이필동 선생이 경주 엑스포 주제공연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밀양에서 경주까지 2시간 30분이 넘는 거리를 70일 동안 미니버스를 타고 출퇴근 공연을 다녔습니다. 경남 산청에서 새로운 선비축제를 시작하면서 강준혁 선생이 저희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축제 예산이 너무 적었습니다. 고작 1억3,000만원으로 무슨 축제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차라리 연극 한 편 제대로 만들고, 지역의 의례적인 축제방식은 모두 생략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연극이 ‘시골선비 조남명’입니다. 이 연극은 산청 시골 중학교 운동장에서 초연되었고, 그 해 2001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대상 연출상 남자연기상 음악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이듬 해 북경에서 열린 베세토 연극제 한국작품으로 공연되고, 와세다대학 연극 박물관에 조남명이 입었던 의복과 공연자료가 전시됩니다. 축제와 공연예술이 행복하게 만난 결과이겠지요.
경기도 문화의전당 제작 창작 뮤지컬 ‘화성에서 꿈꾸다’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경기도에서 의뢰한 뮤지컬이 밀양연극촌에서 제작되었습니다. 초연되자마자 한국뮤지컬 대상 연출상 음악상을 수상하였고, 이듬해 제1회 뮤지컬 어워드 대상과 남자 연기상을 수상했습니다. 최근 3년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된 창작 뮤지컬 ‘이순신’도 밀양연극촌 제작 작품입니다. 올해 완성된 공연물로 대구 국제뮤지컬 페스티벌에 초청되었고, 이순신 역을 맡았던 민영기씨가 남자연기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연희단거리패 또한 ‘아름다운 남자’(이윤택 작 남미정 연출)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브레히트작 이윤택 연출) ‘원전유서’(김지훈 작 이윤택 연출) 등 대극장 창작극을 자체 생산해 내었습니다. ‘원전유서’는 4시간 30분이 소요되는 창작극이었지요. 이제 밀양연극촌은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작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연극 뮤지컬 제작장이 되었습니다.
2001년 여름, 폐교에서는 첫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막을 엽니다. 서울에서 만난 후배 연극인들에게 “밀양에 와서 연극 한번 공연해 주지 않을래? 초청료는 100만원이야.” 그렇게 해서 박근형, 양정웅, 남긍호, 장진씨의 작품이 첫 선을 보입니다. 이때도 남긍호씨의 마임극 ‘47번지’에서 누드 연기가 펼쳐졌습니다. 연극원 교수 신분인 남긍호씨는 홀랑 벗고 무대에서 10분 이상 뛰어 다녔습니다. 그러나 관객 중 누구도 누드 연기를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젊은 연출가전에서 제1회 대상과 연출상을 수상한 양정웅 연출 극단 여행자의 ‘한 여름 밤의 꿈’은 지금 한국 연극을 대표하는 세계 순회 공연물이 되었습니다. 초연 당시 초청비 100만원으로 만든 연극이 그렇게 놀라운 문화 콘텐츠로 성장한 것이지요.
올해 축제 열 돌을 맞이하면서 폐교 본관이 헐리고 국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멋진 성벽극장이 완성되었습니다. 200인을 수용할 수 있는 쾌적한 숙소, 5개의 극장, 자료관, 무대제작소, 의상보관실, 소품 창고, 녹음실까지 갖추었습니다. 영국 국립극장 스튜디오 예술감독 퍼니 모렐은 영국에서도 볼 수 없는 종합적인 연극 교육 및 제작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밀양연극촌은 저희들만의 공간일 수 없습니다. 저는 반농담조로 말합니다. 연극촌을 국가에 헌납할테니 국립 밀양연극촌으로 키워 달라고. 아니면 밀양 시립? 그도 아니면 문화재단으로…. 이제 밀양연극촌은 개인 극단이 운영하기에는 벅찬 존재가 되었습니다. 공공성을 지닌 연극 메카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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