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의 신묘한 위력을 본 인류는 이후 2차대전을 거치면서 본격적인 항생제 개발에 돌입, 결핵 말라리아 홍역 등 온갖 세균성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제압해나갔다. 마침내 60년대 말 미국 공중위생국은 유사 이래 인류를 괴롭혀온 전염병과의 긴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가 도래했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러나 축배는 너무 일렀다. 기존 항생제에 내성을 지닌 세균들이 무차별적으로 등장하면서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항생제로는 어찌할 수 없는 병원균, '슈퍼버그(superbug)'는 그렇게 70년대에 일찌감치 생겨났다.
■ 병원균이 내성을 얻는 과정은 일반적 진화원리를 따른다. 항생제에 자주 공격 당하면 대부분의 세균은 죽지만 어디에나 특별히 '쎈 놈'들은 있기 마련. 항생제를 견뎌낸 일부 쎈 놈들이 세대를 거듭해 번식하면서 주류가 되는 것이다. 정확히 자연선택 과정이다. 허겁지겁 이에 맞설 항생제를 개발해봐야 자연선택을 반복하는 세균군 앞에서 곧 무력화한다. 끊임없는 다람쥐 쳇바퀴식 싸움이다. 재작년 미국 의사협회는 이렇게 진화를 거듭하면서 더 강력해진 슈퍼버그 MRSA로 인한 미국 내 사망자수가 이미 에이즈 사망자를 훨씬 넘어섰다고 밝혔다.
■ MRSA에 대한 마땅한 대응책도 없는 판에 최근 서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또 다른 신종 슈퍼버그가 출현, 급속히 번지고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영국 카디프대학 연구팀에 의하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이미 200여건의 감염사례가 확인됐고, 이들 지역의 여행자가 많은 영국에서도 다수의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미 벨기에에선 사망자까지 나왔다. NDM-1로 명명된 이 박테리아는 현존하는 어떤 항생제도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는, 그야말로 사상 최악의 슈퍼버그라는 것이다. 아직 한국에선 감염보고가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 미국의 저명한 과학저술가 마크 월터스는 광우병 에이즈 등을 포함, 현 인류를 위협하는 치명적 신종 질병들을 묶어 '환경전염병(ecodemic)'으로 지칭한다. 인간의 오만한 자연파괴행위로 생태계 균형이 무너진 데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슈퍼버그 같은 내성 박테리아 역시 깨끗하고 건강한 환경을 보존함으로써 질병을 줄이려는 노력보다는, 값싸고 쉬운 항생제에 무분별하게 의존함으로써 초래한 재앙이라는 얘기다. 이런 주장을 담은 그의 책에 국내번역자는 이란 제목을 달았다. 인정치 않을 수 없는, 섬뜩한 진실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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