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든 허수아비가 농부 아저씨들의 시름을 한 웅큼 덜어줬으면 좋겠어요.”
17일 오전 11시 경기 용인시 처인구청 대회의실. 용인ㆍ성남 관내 초ㆍ중ㆍ고생 400여명이 2,3명씩 짝을 지어 허수아비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곧 다가올 ‘허수아비 시즌’에 대비해 전시도 하고 시골 농가에 나눠 주기 위해서다.
대회의실에는 두툼한 나무막대, 헌 옷가지, 노끈, 철사, 밀짚모자 등에 재활용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옷은 용인시 새마을회에서 수거한 헌 옷들이 재활용됐다. 나머지 소품들은 학생들이 집에서 쓰지 않는 것들을 가져왔다.
누가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자신만의 개성 있는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다소 어려운 작업은 용인시 자원봉사자와 미술치료 봉사단, 포곡고 미술 선생님 등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먼저 나무를 열십자로 고정시킨 뒤 공기 거품 비닐을 감싸거나 스티로폼으로 몸통을 만들고 헌 옷을 입혔다. 플라스틱 통이나 스티로폼으로 얼굴을 만든 뒤 눈 코 입을 붙여 재미있는 표정을 만든다. 머리카락은 노끈을 잘게 잘라내거나 못쓰는 목도리의 털실을 풀어 만든다. 마무리 작업으로 모자를 씌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후 못쓰는 목도리를 두르거나 지갑이나 가방까지 걸쳐 맵시를 내면 영락없이 ‘사람 같은’ 허수아비가 탄생했다.
작업을 시작한 지 1시간 반 가량 지나자 ‘환경 지킴이 족장’ ‘재활용 맨’ ‘신랑ㆍ신부 허수아비’ ‘붉은 악마’ 등 개성이 뚜렷한 나만의 허수아비들이 속속 탄생했다. 서로 사귀게 된지 3개월 정도 됐다는 한 고교 1년생 커플은 ‘사랑의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허수아비 양쪽 손에는 “OO아 앞으로 서로 더 사랑해 주자”는 글귀도 조그맣게 써 놨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 국가대표 팀을 열렬히 응원했다는 도균우(13) 군은 응원 당시 썼던 부부젤라와 붉은악마 티셔츠, 응원봉으로 ‘붉은악마’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최근 인라인 스케이트에 푹 빠진 최은서(13)양은 작아져서 이제는 신지 못하는 헌 인라인 스케이트와 헬멧을 가져왔다. 아빠에게 작품을 꼭 보여주고 싶다는 한 어린이는 허수아비 목에 “흡연은 건강에 치명적입니다”는 표어를 걸었다. 이외에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허수아비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얼굴 사진을 오려 붙인 걸그룹 허수아비, 힙합 허수아비 등도 있었다.
새를 쫓아내는 허수아비 본연의 기능성도 잊지 않았다. 반짝이는 빛으로 새를 쫓아내기 위해 은박지를 두른 허수아비, 위협용 전구를 목에 단 신호등 허수아비, 눈을 4, 5개씩 단 괴물 허수아비도 탄생했다. 용인시 김탁연 자원봉사팀장은 “도·농 복합도시인 용인의 문화ㆍ지리적 특색을 살려 청소년들은 간접적으로 농촌 체험을 하고, 관람객들에겐 이색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며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아 내년에도 행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제작된 300여 개의 허수아비는 18일부터 용인농촌테마파크 관광개발 경관단지(처인구 원삼면)에서 열리는 허수아비 축제에 2주일 동안 전시된다. 허수아비 설치를 원하는 농가가 있을 경우 무료 제공한다.
글ㆍ사진=강주형기자 cub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