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요, 범인이 누군지 이제 찾을 수 있겠어요?"
16일 서울 양천구 신월7동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1층 중회의실. 유전자분석과 황정희(36) 연구원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초ㆍ중학생 20여명은 일제히 "B가 범인이에요" "네, B가 협박편지를 보냈어요"라고 대답했다. 여름방학을 맞아 국과수가 마련한 과학수사 실습 체험교실에 참가한 학생들이다.
이들이 받은 첫 과제는 협박편지를 보낸 범인 찾기. 전날 누군가 A군에게 붉은 글씨로 협박편지를 보냈는데, A군은 최근 친구 B, C, D와 싸운 적이 있다. 문제는 셋 다 빨간 펜을 갖고 있다는 것. 이들은 진범을 어떻게 찾았을까.
같은 색 잉크라도 성분이 달라요
4개조로 나뉘어 조별 연구사의 지도아래 실험이 시작됐다. 범인을 찾는 데는 '크로마토그램'(chromatogram) 기법이 동원됐다. 눈으로 볼 때는 같은 빨간 색이지만 잉크 성분이 달라 시약을 이용, 잉크의 각 성분이 분리되는 정도의 차이로 구별해 내는 것이다. 황 연구원이 "국과수에서도 이런 방법으로 비슷한 것들을 가려낸답니다"라고 설명하자 여기저기서 "아~"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결국 편지와 B가 지닌 펜의 성분이 동일하다는 사실로 아이들은 범인을 잡았다.
진폐·위폐를 구별해 보는 시간. 회의실 앞쪽에 마련된 스크린에 현미경으로 확대한 1만원 권 모습이 펼쳐졌다. 세종대왕, 한국은행, 경회루 등 위조 방지를 위해 구석구석 깨알같이 숨겨진 작은 글씨들이 나타나자 "와~"하는 탄성이 터졌다. 유현채(지향초 5년)군은 "어떻게 저런 작은 글씨를 넣지"라며 신기해했다.
지문처럼 목소리도 제 각각
음성연구실로 이동한 아이들은 전옥엽(35) 연구원의 말에 귀를 쫑긋 기울였다. 진폭(소리의 크고 작음)과 파장(소리의 높낮이)에 대한 설명에는 지루한 듯 몸을 꼬기도 했지만 직접 목소리를 녹음한 뒤 나타나는 성문(聲紋·voiceprint)을 보면서 흥미로워했다.
전 연구원이 "사람 지문이 제 각각인 것처럼 목소리도 고유의 형상이 있기 때문에 범죄 수사에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한 학생이 "다른 사람 목소리 흉내를 잘 낼 수도 있잖아요"라고 문제제기를 하자 "들리는 게 비슷할 뿐 소리를 내는 성도(聲道)구조는 바꿀 수 없답니다"라는 친절한 답이 돌아왔다.
심리연구실에서 열린 거짓말 탐지체험 시간은 어느 때보다 들떠 있었다. "거짓말하면 100% 들키나요?" "거짓말인지 어떻게 알아요?"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고 김희송(40) 연구원은 "거짓말하면 심장이 마구 뛰고 손에 땀도 나고 그렇죠? 그런 자율신경계 변화를 측정해 가려낸답니다"고 말했다.
대표 체험자로 조예인(양천중 2)양이 나섰다. 동물 등의 그림을 보여주고 일부러 거짓 대답을 하도록 하는 실험이었는데, 다행히(?) 거짓말이 들통나진 않았다. 김 연구원은 "정확한 조사를 위해서는 3~4시간 전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했다"며 "통계적으로 정확도가 98.2%에 이른다"고 했다. "자녀가 담배를 피는지 물어봐 달라는 학부모도 있다"는 말에는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이날 자녀와 함께 체험교실에 참가한 박미자(40)씨는 "미국 드라마 'CSI'를 보며 궁금한 게 많았는데 직접 와서 보니 많은 궁금증이 풀렸다"며 "아이들에게도 호기심을 채우고 학구열을 높일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정해빈(강월초 5년)양은 "학교에서는 못해 본 여러 실험을 해 볼 수 있어 좋았다"고 뿌듯해했다.
과학수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된 이번 체험교실은 20일(금)까지 이어진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