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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헤르타 뮐러 방한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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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헤르타 뮐러 방한 강연

입력
2010.08.16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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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루마니아에서 차우셰스쿠 독재를 뼈저리게 경험했고 그 나라가 무너지는 걸 망명지인 독일에서 똑똑히 봤습니다. 하지만 문학이란 그런 경험을 고발하거나 변형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학은 굉장히 작은 사물에 대해 쓰는 것이고, 스스로 분명해지기 위해 자기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나는 조용히 모든 것을 글 속에 넣을 뿐, 그것이 고발문학이 될지는 읽는 사람에게 달린 것이죠.”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57)가 처음으로 방한, 16일 중앙대 서울캠퍼스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비교문학대회에 참석해 특별 강연을 하고 국내 언론과도 간담회를 가졌다. 150㎝ 남짓해 뵈는 작은 체구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뮐러는 환영하는 청중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시종 풍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는 등 내성적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밝은 모습을 보였다.

뮐러는 자신이 소설에 즐겨쓰는 소재를 나열한 ‘이발사, 머리카락, 그리고 왕’(The Barber, the Hair and the King)을 특별 강연의 제목으로 삼았다. 그는 40분가량의 강연에서 자신의 경험을 사례로 독재 치하의 루마니아에서 공고한 감시체제가 일상에 구축되는 메커니즘을 공들여 설명했다.

그는 누군가 자기 집을 거리낌없이 드나들며 동태를 감시하고 자신이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경찰 끄나풀 노릇을 하는 것을 발견한 경험을 전하면서 “이러한 일상 가운데 천천히, 조용히, 그리고 자비심도 없이 낯익은 거리와 벽과 사물들 속에서 낯선 시선이 생겨났다”며 도처에서 감시받는 듯했던 당시의 공포감을 말했다. 뮐러는 또 “이러한 모든 외적인 상태에 반항해서 내면에서 삶의 욕망이 자라나는데, 나는 그것을 지칭하기 위해 ‘마음짐승’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뒀다”며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대표작 의 제목의 유래를 밝히기도 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뮐러는 “어제(15일) 서울시내 호텔에 머물며 광복절 행사를 창 밖으로 보면서 북한 독재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것에 경탄했다”며 “북한은 끔찍한 괴물 같은 국가로 역사에서 미끄러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차우셰스쿠는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김일성에게 배운 것을 통치에 활용했다”며 “내가 노벨문학상을 타서 가장 잘된 일은 사람들이 독재에 대해 많이 얘기하게 됐다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작가로 데뷔한 지 28년이 된 뮐러는 “루마니아에서 살 때는 늘 불안하고 쫓기는 느낌 때문에 짧은 텍스트로 소설을 썼는데, 독일로 망명(1987년)한 뒤로는 그보다 긴 텍스트를 쓰게 됐다”며 “하지만 내 작품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보통 사람이 이만한 세월에 겪을 만한 변화 이상으로 특별히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글을 쓰려고 종이 앞에 앉기가 힘들어질 만큼 외관상으론 많이 변했지만, 나는 여전히 똑같은 사람이고 변하고 싶지도 않다”고 밝혔다.

뮐러는 18일 서울여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또 한 차례 강연을 하며, 19일 광화문 교보빌딩과 20일 독일문화원에서 각각 열리는 문학행사에 참석한 뒤 21일 출국한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 국내에 소개된 뮐러 작품, 데뷔작 '저지대' 최근작 '숨그네' 등 5편 올해 출간

헤르타 뮐러는 1982년 단편소설집 <저지대> 를 펴낸 이래 장편소설, 단편집, 에세이 등 20여 권의 책을 출간했다. 국내에서 뮐러의 작품은 여러 작가의 짧은 글을 모은 <책그림책> (2001)에만 소개돼 있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장편 및 단편집 5권이 출판사 문학동네를 통해 올해 번역 출간됐다. 그 중 데뷔작인 <저지대> 와 최근작인 장편소설 <숨그네> (2009)가 지난 4월에 나왔고, 1986~94년에 쓰여진 다른 3권의 장편은 뮐러의 방한에 맞춰 이 달에 동시 출간됐다.

<숨그네> 를 빼면 국내 출간작 4권은 뮐러의 30여년 문학인생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작품들로, 루마니아의 독일계 소수민족 가정에서 태어나 34세 때인 1987년 서독으로 망명할 때까지 차우셰스쿠 독재 치하에서 살았던 작가의 경험을 그 모티프로 하고 있다. 이들 작품엔 운율이 살아 있는 짧은 문장, 밀도 높은 서정과 강렬한 묘사 등 뮐러 문학의 특질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19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저지대> 는 작가가 나고 자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유년의 기억, 죽음과 불안에 사로잡힌 정서, 가부장적 폭압의 일상 등을 형상화했다. 서독 망명 직전 발표한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었다> (1986)는 루마니아 독재 치하를 벗어나 서구 국가로 가려는 망명 대기자들의 불안한 내면을 묘파한 장편이다.

1990년대 작품인 장편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1992)와 <마음짐승> (1994)에는 대학 재학 당시 정권에 비판적인 문학모임에 가입했다가 요주의 인물로 감시 당하고, 졸업 후엔 번역사로 공장에 취직했다가 비밀경찰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 당한 뮐러의 자전적 경험이 공통적으로 반영돼 있다.

<숨그네> 는 뮐러 자신처럼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망명한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1927~2006)가 겪었던 소련 강제수용소 생활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전작들에 비해 한결 서사성이 강해 뮐러 문학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장편소설이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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