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허재영(46) 단국대 교양학부 교수는 저서 (경진 발행)에서 “통상 1930년대 후반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일제의 조선어 말살 정책은 1905년 을사늑약에 따라 설치된 통감부(1905~1910) 시기부터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일제의 한국 강제병합 이전부터 이미 조선어 말살이 시작됐다는 주장이다. 그간 통감부 시기에 대한 연구는 정치ㆍ외교적 측면에 주로 집중됐고 교과서와 어문정책 등에 대한 연구는 드물었다.
허 교수에 따르면 이 시기 학교교육에서 일본어의 비중이 크게 늘어났다. 대한제국이 수립된 1895년부터 일본어는 여러 외국어 가운데 한 과목이었으나 통감부가 세워진 1905년부터 일본어는 국어와 함께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
대한제국 초기 공식 어문정책이었던 순한글 정책은 일제에 의해 국한문혼용 정책으로 바뀌었다. 우리말을 한자와 가나문자를 섞어 쓰는 일본어와 비슷하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이때 이미 일본어로만 쓰여진 교과서 편찬도 시도됐다. 한국인들의 반발 여론이 거셌지만 ‘학부편찬 이과서(理科書)’처럼 일본어로만 쓰인 교과서도 나왔다.
일선한(日鮮漢) 혼합문체라는 것도 등장했다. 국한문혼용체처럼 주요 낱말은 한자로 쓰고 거기에 토를 달되, 일본어 가나문자와 한글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다. 가령 1909년의 한 관보에는 ‘明治 四十二年 中當區 裁判所ノ(의) 取級ニ(에) 係ル(한)’이라는 공고가 실렸는데, 이는 ‘메이지 42년 중당구 재판소의 취급에 관계한’이라는 뜻으로 가나문자를 원문에 쓰고 한글은 괄호 안에 주석처럼 달았다.
일제는 이와 함께 교과서 내용에 대한 검열도 강화해 ‘애국심’ ‘자유’ ‘독립’ ‘충군애국’ 등의 내용이 들어가면 부적절한 교과서로 취급했다. 허 교수는 “이 시기의 교과서 정책은 통감부 설치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우리의 역사와 국민정신을 약화시킴으로써 자주독립의 기운을 꺾는 방향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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