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며시 짜증이 치밀었다. 그는 내 반응을 탐색하는 듯한 눈초리로 살살 웃으면서 연신 공치사였다.
"한국이 이제 아시아 넘버원입니다. 일본도 못 당하게 됐어요."
1994년 초여름. 신혼여행지였던 동남아의 한 휴양지 뷔페에서 우연히 만난 중년의 일본인 상사원은 별로 재미도 없는 얘기에 집요하게 들러붙었다.
장기간에 걸친 엔고로 가격에서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게 된 '메이드인 코리아'가 몽골기병처럼 파죽지세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조선 수주액은 곧 일본을 추월해 세계 1위로 도약할 기세였고, 반도체 수출은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일구며 미주와 유럽 등 세계 주요 시장을 파상 공격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일본인의 웃음 속엔 왠지 빈정거리는 듯한 복선이 담겨 있었고, 신혼의 아내 옆에서 나는 비위가 꼬였던 것이다.
"여기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내 신부고, 사실 난 한국이든 일본이든, 넘버원이든 개뿔이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그렇게 말허리를 잘랐지만, 뒷맛은 영 개운치 않았다.
그 기분 나쁜 웃음이 뒤통수를 때리듯 다시 떠오른 건 약 1년 뒤였다. 1995년 중반. 우리 수출은 여전히 고공행진이었다. 정부는 2005년이면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돌파하고, 2010년엔 경제규모에서 영국을 따돌리고 세계 7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기염을 토하던 때였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우리 수출에 비례해 대일무역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그 해 상반기에만 50억달러를 넘어서자 '가마우지경제'라는 말이 다시 나돌며 그 기분 나쁜 웃음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가마우지라는 새는 길을 들여 놓으면 물고기를 잘 잡아오는데, 목 아랫부분을 끈으로 묶어 놓으면 잡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고 고스란히 주인에게 뱉어내게 된다. 80년대 말 일본의 한 경제평론가가 썼다는 '가마우지경제'는 기계와 부품의 대일의존도가 높아 수출에서 번 돈의 상당액을 일본에 다시 상납해야 하는 우리 산업구조를 빗댄 것이다.
그때 정부는 부랴부랴 '자본재산업육성대책'을 내놨다. 당시 재경원 관료는 "대책대로라면 2005년부턴 대일무역수지가 균형을 이루게 된다"며 "우리 산업의 대일 독립선언으로 봐도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바랐던 그 웃음이 다시 떠오른 건 2000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한 고위 경제관료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전야에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당시 일본 대장성 국제금융담당 차관을 찾아갔던 얘기를 풀어놨다.
"금융지원을 요청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봅디다. 그러더니 빈정거리는 건지 뭔지 알 수 없는 미소를 머금으며 뜬금없이 100억달러를 이 방에 쌓으면 어디까지 찰 것 같습니까, 하는 거요. 화도 나고 수치스럽기도 하고…멱살이라도 잡고 싶더라구."
얘기를 들으며, 사카키바라씨의 알 수 없는 미소와 예의 그 일본인 상사원의 웃음이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이젠 16년 전 그 일본인의 생김새조차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빈정거리는 듯한 웃음은 내 안에서 화석 같은 이미지로 굳어져 잊을 만 하면 출몰하곤 한다. 대일무역적자가 작년 보다 45% 급증해 상반기에만 사상 최대치인 180억달러에 달했다는 한국은행의 최근 발표는 광복절을 맞아 또다시 그 웃음을 떠올리게 했다. 15년 전, 우리 산업의 대일 독립선언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장인철 생활과학부장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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