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평화통일에 대비하자며 현실적 방안의 하나로 제안한 ‘통일세 신설’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담론 수준에 머물던 통일비용 문제를 공식으로 의제화했다는 점에서 정책적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그러나 발언 시점 및 시행 방법의 적절성, 효과 등에 대해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다수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통일에 대비한 재원 마련’이란 총론에는 긍정적 답변을 내놨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안보팀장은 “정치적 고려를 떠나 통일비용 문제가 이제서야 이슈화한 것은 사실 늦은 감이 있다”며 “국가가 통일을 정책의 우선 순위로 상정하고 있다면 그 부담을 어떤 식으로든 상쇄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익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도 “자칫 ‘퍼주기 논란’을 야기할 수 있는 통일비용 문제를 보수 정권에서 먼저 꺼냈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주는 효과도 그만큼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 대통령의 통일세 언급이 과연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됐느냐는 점이다. 민간 차원의 교류마저 중단된, 남북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갑자기 비용 문제를 거론한 것 자체가 생뚱맞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관계에서는 지금까지 일정한 절차와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절대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상호간 화해협력 관계를 복원하는 일이 시급한 시점에 뜬금없는 통일세 신설 제안은 북한 붕괴를 가정한 흡수통일 전략이라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고 비판했다.
반면 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급변사태에 대비한 모든 비용을 갑자기 국민 세금으로 조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통일로 가는 실질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명제가 통일세라는 특정 방안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관계 해결에 대한 현정부의 조급증 때문에 통일세가 거론됐다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북 전문가는 “이 대통령도 통일에 저해되는 대통령으로 역사의 기록에 남겨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는 남북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포석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과세 형태의 통일비용 마련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양무진 교수는 “1990년대 후반에도 대북 경수로 지원금 재원을 전기세의 특별부과금 방식으로 거둬 충당하는 방안이 추진됐으나 관계 부처간 협의에서 논란이 돼 결국 흐지부지 됐다”며 “천안함 사태 등으로 대북 여론이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영수 교수도 “통일이라는 긍정적 가치를 부정적이고 구속력을 가진 세금이라는 용어와 조합한 자체가 난센스”라며 “불요불급한 예산을 과감히 통일 재원 마련 항목으로 바꾸는 등 정부가 먼저 자구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 뒤에야 비로소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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