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저축은행에 공적자금을 쏟아붓게 했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망령이 은행권에도 출몰할 기미가 나타나고 있다. 저축은행과 비교하면 여전히 PF대출의 신용 수준이 우량하지만 대출규모가 저축은행보다 4배나 많아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큰 재앙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 은행권은 대손충당금 기준을 한층 높이는 방향으로 선제적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으나, PF부실에 따른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한 처지다.
떨고 있는 은행권
16일 금융당국과 은행권에 따르면 올 6월말 현재 시중은행의 PF 대출채권(약 45조원) 연체율은 2.94%까지 치솟았다. 올 3월말 기준 13.7%에 달했던 저축은행보다는 훨씬 낮지만 대출규모는 저축은행(약 12조원)의 4배나 된다. 문제는 연체율 급등세. 2년 전만 해도 0.68%에 불과하던 은행권 PF 연체율은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작년 말 1.67%로 오른데 이어 계속 상승하고 있다.
은행들은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면서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은행연합회는 은행마다 서로 다른 PF 건전성 분류 기준을 좀 더 ‘보수적’으로 적용한 내용의 모범규준을 다음달 중 내놓을 예정이다. 분양률이나 공정률 등에 맞춰 등급을 보다 차별화하는 한편 같은 건전성분류 구간이라도 충당금 적립률을 최고 수준으로 적용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공사 보증이 있더라도 사업성이 떨어지면 부실로 구분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충당금 적립 기준을 높여 최악의 상황에 미리 대비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반기 수익에도 빨간 불
올 2분기 은행권의 당기순이익(약 1조3,000억원)은 1분기(3조4,000억원)보다 무려 60%나 줄었다. 2분기에 집중된 기업 구조조정과 PF부실에 대한 대손에 대비해 5조6,000억원을 미리 충당금으로 설정했기 때문. 실적발표 당시 은행들은 더 이상의 충당금 적립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PF시장 침체로 은행들이 신규 대출은 자제하면서 충당금은 더 쌓을 가능성이 높아 당분간 PF관련 건전성 지표는 더 악화되고 순이익도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PF대출 비중이 높은 은행에 대해 주의보가 내려졌다. NH투자증권 김은갑 애널리스트는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서 “부동산 경기침체와 금리인상 가능성으로 은행업종의 실적은 코스피지수 상승세를 넘어서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충당금 부담을 감안하면 PF대출 규모가 큰 KBㆍ우리금융지주 등과 상대적으로 대출 규모가 적은 신한지주, 기업ㆍ부산은행 등은 차별화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장 시중은행의 PF 관련 리스크가 저축은행처럼 크게 악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하면 큰 대가를 치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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