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가을
정진규
여름을 여름답게 들끓게 하지도 못하고 서둘러 가을이 왔다 모든 귀뚜라미들의 기인 더듬이가 밤새도록 짚은 울음으로도 울음으로도 다 가닿지 못한 어디가 따로이 있다는 게냐 사랑으로 멍든 자죽도 없이 맞이하는 가을의 맨살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이른 새벽길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바닷가 민박집 여자의 아침상도 오늘로 접어야 하리 늘 비가 내렸다 햇살들의 손톱 사이에 낀 푸른 곰팡이들이 아직도 축축하다 부끄럽다 이 손으로 따뜻한 네 손을 잡겠다 할 수는 없구나 딸이 늦은 시집을 간다는 편지를 객지에서 받는다 노동의 지전을 센다 마지막 그물을 거두었다 이러는 게 아니지 너무 오래 혼자 있는 가을에 익숙해졌다 서둘러 돌아가야 하리 왜 이토록 서성거리는 게냐 슬픔이 떠난 자리는 늘 불안했다 낡은 입성으로 오는 마지막 가을
“귀뚜라미 울음 소리에 가슴 깊이 파고드는데”라고 시작하는 노래가 있었죠. 제목은 ‘슬픈 계절에 만나요’. 하지만 가을이 슬프다는 건 사람에게나 해당하는 얘기겠네요.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가을에만 들리는 까닭은 귀뚜라미들에게는 오직 가을만이 사랑의 계절이기 때문이죠. 우는 귀뚜라미들은 모두 수컷들입니다. 늦은 여름부터 귀뚜라미들은 짝을 맺기 시작해서 가을에 알을 낳지요. 암컷을 유혹하고 다른 수컷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귀뚜라미들은 밤새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귀뚜라미 울음 소리는 사랑의 소리. 가을은 사랑의 계절. 사랑으로 멍든 자죽도 없이 맞이하는 가을,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가슴 깊이 파고드는 일에도 어쩌면 생물학적 근거가 있겠군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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