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인 지인에게서 들은 얘기다. 국내 조선소의 노르웨이 지사에서 근무하다 현지 회사로 옮긴 적이 있는데, 부장급인 자신과 최고경영자(CEO)의 월급이 별 차이가 없어 깜짝 놀랐다고 한다. CEO는 70%가량 떼는 등 고소득자의 세금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장급과 CEO 연봉 차이가 수십 배로 벌어지는 국내 대기업과 비교하면 월급총액 차이가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납부된 세금은 국민의 복지를 위해 쓰이고 은퇴하면 연금으로 돌려준다.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 생산성도 행복지수도 높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
교통사고 소송 과정에서 삼성전자 부사장의 연봉이 공개됐다. 2008년 한 해 동안 급여와 성과급을 더해 10억2,0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고 한다. 삼성전자 직원 1인당 평균연봉 6,780만원(2009년 본사 기준)의 15배, 도시가구 중위(中位)소득 3,626만원(통계청 2010년)의 28배였다. 연봉이 1,000만원 이하인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26.3%(450만3,432명ㆍ2008년 과세대상자)와 비교하면 100배 이상이다.
사장급 CEO의 연봉은 여기서 몇 배가 더 뛴다. 지난해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최지성 사장 등 4명의 사내이사에게 1인당 평균 108억원이 지급됐다. 월급의 15%를 자진 삭감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된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의 연봉은 성과급을 포함해 15억원 안팎으로 전해졌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고, 책임이 무거운 임원에게 더 많은 보수를 주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임원들 몫이 너무 크고, 아래 직급과의 격차가 날로 벌어지는 데 있다. 성과를 만든 요인은 다양한데, 유독 임원에게 엄청난 몫을 몰아주는 게 과연 정당한 것일까?
오늘날 대기업의 성공은 재벌 중심 성장정책의 결과물이다. 박정희 정권은 압축 성장을 위해 분배는 나중 일이라며 일단 파이를 키우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한정된 국가 예산을 재벌에 몰아줬고, 중소기업과 농업은 늘 찬밥 신세였다. 이제 과잉생산이 문제 될 만큼 파이가 커졌지만, 대기업 위주 성장정책에는 변함이 없다.
삼성전자의 성과만 해도 정부의 저금리와 감세, 환율방어 영향이 컸다. 환율은 수출 기업의 수익성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또한 법인세 감면 및 임시투자세액공제의 80% 이상은 대기업에 돌아가는데, 삼성전자에 주어진 감세 혜택만 수조 원에 달한다. 부당한 납품대금 인하 등을 감내해 온 중소 협력업체들의 희생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자기 실력만으로 임원 됐나? 학연 지연 등 연고주의와 오너에 대한 충성심이 능력보다 더 중시되는 경우가 많은 게 한국 사회다. 수억 원의 연봉을 받는 공기업 CEO나 감사 자리를 꿰차려면 권력 실세의 낙점을 받아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래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론을 빌리자면, 이런 의문이 자연스레 든다. 임원들이 무슨 자격으로 직원들보다 수십 배 많은 연봉을 받는가? 직원들과의 임금격차가 크지 않았던 10년, 20년 전 임원들은 재능도 없고 일도 적게 했는가? 본인의 노력이나 실력과는 무관하게 권력을 등에 업고 내려온 임원에게 억대의 보수를 주는 것은 정의로운가?
임금 양극화는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안 된다. 국민들 살림살이가 펴려면 내수가 살아나야 하는데, 임금격차가 커져 소비성향이 낮은 부유층에 돈이 쏠리면 성장의 발목을 잡기 마련이다. 서민에게 돈이 돌아야 소비와 생산이 늘고 고용도 창출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진다.
국가 재분배 기능 강화해야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중위소득의 50%에 미달하는 빈곤가구 비율)은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그제 선진국에 비해 임금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중산층 비중이 최근 6년 새 5%포인트나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민간기업의 몫 나누기를 규제할 방법은 없다. 결국 세금과 복지 지출을 통한 국가의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게 해법이다. 노르웨이처럼 고소득자와 대기업의 세금 부담을 늘리고 복지 수준을 높여 사회안전망을 확실히 구축해야 한다.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부자 감세와 복지 축소가 아니라, 부자 증세와 복지 확대로 가야 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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