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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쇼와사' 쇼와시대를 보는 일본 지식인의 시선

입력
2010.08.1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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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 가즈토시 지음ㆍ박현미 옮김

루비박스 발행ㆍ1권 455쪽, 2권 495쪽ㆍ각 권 1만8,000원

전전(戰前) 세대 일본인들에게 쇼와(昭和)시대(1926~1989)는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시대다. ‘쇼와’는 히로히토 일본 천황의 연호. 군국주의의 광풍이 절정으로 치닫던 ‘15년 전쟁기’(1931년 만주사변부터 1945년 태평양전쟁 종전)가 그 안에 포개지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300만명이 넘는 대군이 하루아침에 무장해제당하는 치욕을 감내해야 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물론 이 시대는 일본인들에게 쓰라린 좌절의 시대로만 기억되지는 않는다. 한국전쟁 특수로 전후의 빈사 상태에서 벗어나 고도성장을 이루며 경제대국의 신화를 써나간 시대이기도 하다.

는 일본의 대표적인 시사월간지 ‘분게이??주(文藝春秋)’ 편집장 출신의 저명한 역사저술가인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ㆍ80)가 들려주는 일본 현대사 이야기다. 역사 강의를 하던 그가 2000년대 초 어느날 한 젊은이로부터 “태평양전쟁에서 누가 이겼나요?”라는 질문을 받은 것이 집필 계기가 됐다고 한다. 2권의 책은 태평양전쟁 종전을 기점으로 각각 ‘전전’ ‘전후’ 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폐허, 재생, 부흥, 번영으로 이어지는 일본 현대사가 생동감있게 그려진다. ‘전전’편은 2004년, ‘전후’편은 2006년 출간됐다.

지은이는 군국주의를 반성하고 평화헌법을 옹호하는 이른바 호헌파 지식인의 입장에서 쇼와시대를 평가하지만 우리의 시각으로는 비판적 독법이 필요하다. 그는 일본이 군국주의의 길로 치닫도록 부추킨 전전의 지배세력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예컨대 만주사변의 시발이 된 1931년 9월 일본 관동군의 만주철도 폭파와 군사행동은 형식상 국가원수인 천황의 승인이 있어야만 했지만 군부 세력은 천황의 명령 없이 군대를 움직였다. 독단적으로 출정을 결정한 관동군 장교들은 군법에 따라 사형에 처해야 할 중죄인들이었지만, 오히려 이후 참모본부장이 되고 천황의 시종무관장이 되는 등 출세의 길을 걸었다. 저자는 “쇼와가 엉망이 된 것은 바로 이 순간”이라고 말한다.

1945년 8월 국민 전체가 패전을 반성해야 한다는 히가시쿠니노미야 수상의 유명한 ‘일억총참회론’에 대해서도 그는 쓴소리를 한다. “모두가 나빴으니 서로 책망하자는 것은 그만두자는 대충주의로 연결됐고, 이것은 일본인이 전후 어떤 일본을 만들까를 진지하게 생각할 때 커다란 장애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히로히토의 과오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한다. 오히려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히로히토가 맥아더의 사무실을 찾아가 회동했을 때 커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비록 전쟁에는 졌지만 승자가 주는 물은 마시지 않겠다는 걸 보여준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왕의 긍지라고 할지, 의연함을 확실히 보여준 것 같다”고 평하는 식이다.

또한 연합군이 진주하기도 전에 일본 지도부가 자발적으로 공창(公娼)을 마련하려 했던 사실, 불과 몇 달 전까지 영국과 미국을 몰아내자며 ‘영미귀축’을 외치던 일본인들이 연합군이 진주하자마자 영어회화 붐에 휩싸였던 일 등을 들춰내며 일본인들이 굴종의 자세를 취한 것에 대해서 통분하는 듯한 태도도 우리로서는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책이 역사적 사실을 지루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지겨워하지 않도록 여러가지로 신경을 쓴 점은 돋보인다. 태평양전쟁 개전을 결정하는 어전회의 광경을 소설처럼 긴박하게 그려내고, 1930년대 중반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는다며 여성들이 길거리에서 승전을 기원하는 부적용 자수를 떴던 사회상을 소개하는 등 저자의 서술은 ‘쇼와사의 서사꾼’이라는 별명답게 흥미진진하다.

최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한 일본 총리의 담화에 대한 한일 지식인들의 엇갈린 평가에서 보듯, 자국의 과거를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때로 우리와 역사인식을 공유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는 어쨌든 과거는 반성하겠지만 천황제가 상징하는 사회결속력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보통 일본인들의 자기모순을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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