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 지음
바다출판사 발행ㆍ528쪽ㆍ2만3,000원
1990년대, 우작우작 팝콘을 씹어대던 영화관의 젊은이들을 의식 있는 시네필의 길로 들어서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의 첫 평론집이다. 올해로 평력(評歷) 26년. 그간 쓴 원고를 모으면 탑을 몇 개 쌓고도 다리 하나는 놓을 텐데, 정씨는 기어이 영화 한 편(‘카페 느와르’ㆍ2009년)을 만든 다음에야 그걸 책으로 묶었다.
의 머리말에서 밝힌 이유. “무엇보다도 내가 두려워한 것은 책을 낼 때 무언가 그 자리에 머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끔찍한 일이다. 생각이 어딘가에 멈추는 것은 죽음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내가 그만 약속을 한 것이다. 나는 영화를 찍게 되면 책을 내겠다고 말을 해 버렸다. 그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다.”
책에는 장 뤽 고다르,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고전 작품에 대한 이야기부터 그가 영화에 대한 주림을 채웠던 프랑스문화원에 대한 추억, ‘영화광을 호명하는 방식’에 대한 고찰, 친분 있는 감독들과의 대화 등 여러 성격의 글이 섞여 있다. 정씨가 말하는 “유일한 고정점”은 우정. 그는 “오로지 영화만이 내 삶을 외롭기 하지 않았다”며 그가 맛본 우정을 함께 나누자고 권한다. 정씨를 ‘영화적 아버지’라 부르는 만화가 정우열씨가 삽화를 그렸다.
함께 낸 책 에는 2001년부터 10년 간 한국영화에 대해 쓴 글들을 묶었다. 그는 영화에 대한 글쓰기를 “칼을 대는 일”로 표현한다. 이 글들은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임상수, 허진호, 장률 등이 만들어낸 새롭고 매혹적인 영화를 끌어안고 그가 벌인 사투의 기록이다.
그런데 정씨의 문장은 그닥 순하지 않다. 그의 글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라면, 왕자웨이 감독의 스텝프린팅 기법(툭툭 끊기는 듯 이어지는 이미지 전개)을 닮은 그 흐름이 조금 낯설 수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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