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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정암촌 '청주 아리랑' 아시나요/ 지린성 조선족 마을 찾은 충북대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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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정암촌 '청주 아리랑' 아시나요/ 지린성 조선족 마을 찾은 충북대 봉사단

입력
2010.08.1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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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서 뱅기(비행기)타고 고생하러 왔는데 그냥 보낼 수 있나유."

1일 오전 중국 지린성(吉林省) 투먼시(圖們市)의 조선족 마을 정암촌(亭岩村)의 노인회관 마당. 한복 차림에 꽹과리, 북, 장구를 들고 나타난 노인들이 마당에 앉아 기다리던 충북대 해외봉사단원들을 에워싸더니 풍물을 치기 시작했다. 한창 흥이 오르자 충북대생들도 콧노래에 짓이나 어깨춤을 췄다. 마당 한 켠에 차린 교자상에는 고기와 떡, 부침개 등이 푸짐하게 쌓였다. 정암촌 리춘봉(48) 촌장은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학생들이 고맙고 기특해 돼지를 잡아 마을 잔치를 차렸다"고 했다.

3,4학년 20명으로 꾸린 충북대봉사단(단장 윤영원ㆍ수의학과 교수)은 7월 23일부터 1일까지 열흘 동안 정암촌과 이웃 마을 양수촌(凉水村)에서 담장ㆍ대문 페인트칠, 마을길 청소, 밭일 등 궂은 일을 맡아 했다. 또 마을 소학교(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영어와 수학, 과학을 재미있는 놀이로 가르치는 교육봉사 활동도 했다. 봉사단은 각 가정에서 주민들과 함께 기거하며 어르신들의 말동무이자, 아이들의 가정교사가 됐다. 충북대생들의 정암촌 봉사는 올해로 여섯 번째다.

충북대봉사단이 중국의 평범한 시골 마을을 줄곧 찾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정암촌을 일군 주역이 충북 사람이고, 이들이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충북의 언어, 노래, 풍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봉사단원 성종현(23ㆍ법학3)씨는 "중국에서 충청도 정신을 꿋꿋이 지켜온 분들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왔다"며 "같은 해외 봉사활동이더라도 기왕이면 우리 동포를 돕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10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정암촌은 한을 품고 있다. 정암촌은 1938년 일본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충북 청주, 청원, 보은, 옥천의 농민 80가구가 집단 이주해 생겨났다. 모두들 '배불리 먹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일제의 꾐에 빠져 만주행 열차에 몸을 실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척박한 불모지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억척스럽게 황무지를 개간해 터를 잡고 밭을 일궜다. 뒷산에 우뚝 서 있는 정자 모양의 바위를 따서 정암촌이라고 마을 이름도 지었다. 이들이 지독한 가난과 중국인들의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서도 고향의 말과 풍습을 꿋꿋하게 지킬 수 있었던 버팀목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그래서 사무치는 그리움을 고향 노래인 '청주 아리랑'으로 달랬다. 9세 때 부모님을 따라 온 서강숙(81)할머니는 "청주아리랑을 부르며 작업의 고단함을 잊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회상했다.

그런 정암촌의 존재가 국내에 알려진 것은 1990년대 초. 당시 청주농악보존회장을 맡고 있던 충북대 임동철(64ㆍ국어국문과) 교수가 중국 옌볜대(延邊大)와 학술교류를 하던 중 정암촌에서 구전되고 있는 아리랑 가락이 과거 충북 청주지역에서 노동요로 불려지던 청주아리랑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본고장인 청주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춘 농요가 충북 출신 중국 동포들에 의해 보존되어 왔음이 밝혀진 것이다. 지역 문화계는 "자칫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청주아리랑이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있다"고 반겼다. 임 교수는 이후 충북의 각계 인사들을 모아 '정암회'를 꾸리고 정암촌에 장학금과 마을발전기금을 전달하며 인연을 쌓아갔고, 충북대와 옌볜대의 교류도 활발해졌다.

충북도는 2000년 10월 정암촌 1세대 32명을 초청해 도내 친지들과 고향 상봉을 주선했다. 당시 가족ㆍ친지상봉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못지않은 감동을 선사했다. 도는 2001년부터 해마다 정암촌 농민을 초청해 도내 농장이나 식품가공업체 등에서 농업연수를 하고 있다. 지금은 박청국(40)씨등 네 명이 괴산 서부농산 등에서 5개월 과정의 연수를 받고 있다. 청원군도 2002년부터 격년제로 이주민 2세들을 데려와 선진 영농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지역 문화계에서는 청주아리랑을 완전하게 복원해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정암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연극이 무대에 올랐고, 올해 3월에는 청주민예총이 그들의 삶과 애환을 노래극에 담아 청주아리랑 축제를 열기도 했다. 청주시는 청주아리랑을 청주를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고향의 지원과 교류가 이어지면서 정암촌은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 1960년대식 낡은 초가집은 산뜻한 벽돌집으로 새단장했고, 마을 안길도 말끔하게 포장됐다. 농업연수를 하고 귀국한 주민 중 일부가 고추장ㆍ된장 공장을 세워 운영 중이며, 조만간 마을공동 한우사육단지도 들어선다. 2년 전 충북대봉사단이 노인회관 뒷마당에 만든 게이트볼장에서는 70, 80대 어르신들이 운동을 한다. 정암촌 최장현(44)서穗?"고향 사람 덕분에 활력이 생기면서 지린성 내에서 가장 활기차고 잘사는 농촌 마을로 자리매김했다"며 "중국 정부도 우리 마을의 변화상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투먼(중국 지린성)=글·사진 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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