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7월 하순 미소금융 지점을 방문한 이후 크고 작은 정의(正義) 담론이 여권의 화두로 자리잡았다. 대기업 계열 캐피탈사의 대출금리가 40%(실제론 35%)대에 이른다는 한 시민의 하소연이 계기였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재벌 소유 금융사가 일수놀이하듯 이자를 받는 것은 사회정의상 맞지 않는다"며 재벌과 금융당국을 함께 질책했다. 한나라당 서민대책특위의 홍준표 위원장이 "경제성장의 과실이 서민층과 중소기업에 골고루 퍼져야 정의롭고 공평하게 사는 세상이 된다"며 금융구조와 경제구조 개혁을 강조한 것도 이 즈음이다.
■ '소장수의 아들'이라는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말은 더욱 구체적이다. "가진 것 많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혜택과 권력을 누린다면 이 사회는 분노할 것"이라며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정의가 꿈틀대는 대한민국이 미래의 소중한 가치와 좌표"라는 첫 마디가 그것이다. 앞서 그는 "아무런 배경도 없는 서민 촌놈 출신도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임을 20~30대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자신이 소통과 통합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새벽에 청진동 해장국 집에 가면 세상을 읽을 수 있다는 얘기도 살갑다.
■ 2010년 여름 한국에서 돌연 부각된 정의의 개념은 분명치 않다.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혹은 '사회를 유지하고 구성하는 공정한 도리'라는 사전적 의미에 비춰보면 공평한 분배와 공동체적 선의를 떠올릴 수 있겠다. 정치철학 전공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에서 말한 것도 도움이 된다.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들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 여권 주요 인사들이 이런 의미와 고민에서 정의의 잣대를 들고 나왔다면 반길 일이다. 민주시민에게 요구되는 연대의식의 중요성에 눈떴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왠지 낯설고 생경하다. 서로 다른 차원의 서민과 정의를 정치공학적으로 대뜸 이은 것부터 그렇다. 또 실현 가능한 길을 찾는 정치에 과도하게 이상적 가치를 얹는 것은 공허한 결론에 이르기 쉽다. 결코 정의롭지 못한 정당이 정의를 당명에 넣은 일도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일과 실천 대신 말과 약속으로 정의를 정의(定義)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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