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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16> 열차집 윤해순ㆍ우제은씨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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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맛을 만드는 사람들] <16> 열차집 윤해순ㆍ우제은씨 부부

입력
2010.08.1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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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바삭하다. 노릇노릇하다. 고소하고 구수하다. 부드럽다. 감칠맛 난다. 해가 있을 때 먹어도 좋고 해가 떨어진 후에 먹어도 좋다. 소나기 내리는 여름에 맛있다. 꽁꽁 언 손발을 녹여주니 겨울에도 맛있다. 답답했던 마음을 풀어준다. 쓸쓸했던 감상을 녹여준다. 온 식구가 다 좋아한다. 술을 안 자시는 분들도 찬으로 간식으로 좋아한다. 주당들은 발 벗고 앉아 먹는다. 우리 음식이다. 바로 빈대떡, 아니 열차집 빈대떡이다.

서울주당들의 오랜 아지트

몇 달 전, 명사들의 소울 푸드(soul foodㆍ개인의 인생사와 얽혀 있는 등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가진 음식)를 묻는 인터뷰 중 한 출판사 대표는 이런 말을 했다.

“그저 책 좋아하고 술 좋아하던 때라 광화문이 아지트였어요.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맘껏 책을 읽다가 슬슬 배가 고파지면 열차집으로 가 빈대떡을 먹었지요. 그 시절, 그 맛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피맛골’ 초입에 자리했던 열차집은 광화문의 상징같은 맛집으로 오랜 세월 인정받아 왔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지도에서 보면, 경복궁 앞에서 창덕궁 앞까지 이어진 길이었다. 왕이나 고관대작의 행차가 지날 때마다 발을 멈춰야 했던 큰길의 뒤편으로 서민들이 ‘논스톱’으로 내달릴 수 있었던 길이 따로 생겼던 것이다. 그 길을 따라 밥집, 대폿집, 찻집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흔히 ‘주류’라 부를 수 있는 대로변의 한 칸 뒤에 있으면서 많은 이야기와 비밀을 간직한 듯 은근한 내공을 풍기던 길 냄새. 열차집을 비롯, 피맛골과 함께 나이를 먹어간 맛집들은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밥 한끼, 탁주 한 잔 하기 좋은 친정집 같은 곳이었다.

“자리를 옮기면서 쓰던 철판부터 식탁과 의자, 접시까지 다 그대로 갖고 왔어. 사람들이 전이랑 많이 다르지 않게 느껴야 덜 섭섭해 할 것 같아 구조도 비슷한 곳으로 가게를 알아보느라 애를 썼지.”

종로타워 맞은편에 새 자리를 튼 열차집 주인장 윤해순 사장의 말이다. 충남 청양이 고향인 윤 사장은 아내인 우제은씨와 함께 열차집 창업주에게 가게를 이어 받아 그 역사를 이어간 지 벌써 35년째다. 피맛골을 떠나야 할 때가 왔을 때, 일흔을 이미 넘긴 이들 부부는 빈대떡을 그만 해야 하는 것인가 고민도 했다고.

“단골들때문에 못 그만두겠더라고. 여기서 한창 술자시다 노인이 된 손님들, 학생 때부터 들락거리며 나이를 먹어간 친구들이 가게 옮기고 나면 꼭 연락 달라고 자기들끼리 전화번호부를 만들었잖아.”

새 보금자리로 옮겨갈 열차집을 행여 찾지 못할까 봐 단골들이 남기고 간 휴대폰 번호와 명함은 스프링 노트 한 권에 빼곡히 남아있다. 실제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 연락처를 남긴 모든 이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돌렸다는 열차집 식구들은 열차집을 그만 하는 것이 당신들 손에 달린 일이 이미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빈대떡의 핵심은 ‘정(情)’

“빈대떡 지지는 번철만 해도 요즘 좋은 것 많이 나왔길래 두고 올까 했는데, 정이 들어 떼어 둘 수가 없더라고. 손님들도 그렇지. 여기가 특별히 맛있다기 보다는 정들어서 오는 거야. ‘아는 얼굴’이 무서운 거니까. 안 보면 생각나고, 궁금하고 그런 거.”

집요하게 맛의 비결을 묻는 내게 사장님은 그 핵심이 ‘정’이라고만 누차 말씀하신다.

“아, 그건 하나 있어. 우리 집은 돼지 기름을 쓴다는 것. 돼지 비계를 사다가 한참을 끓여서 나온 기름으로 지지니까 맛이 좋지. 돼지기름 내는 일이 보통 된 것이 아니야.”

아하, 한 입만 입에 넣어도 스르륵 퍼지는 풍미는 손수 끓여서 취하는 맑은 돼지기름에서 온 것이었군.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그리고 뭐 별 것 있나. 녹두에 야채 좀 넣고 소금간 해서 그냥 지지는 거지. 아, 우리는 조미료를 아예 안 써. 조미료 쓰면 먹다가 질리거든. 재료 좋은 것 쓰고, 조미료 안 넣고 그게 비결인가?”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사장님은 자택을 중학동 한국일보 사옥 곁에 두고 피맛골까지 걸어 출퇴근 했다 한다. 모처럼 일찍 들어가 쉬려다가도 지인들이 열차집 근처에 왔다 하면 한 걸음에 다시 달려나오곤 했다고.

“지금은 집도 옮기고 가게도 옮겼으니 그 시절같지는 않지. 그 때는 참 좋았어.”

그래도 새로 잡은 터가 옛날 자리와 닮은 점이 많아서 위안이 된다. 좁다란 골목에 자리했다는 점, 자리를 옮기면서 애써 가게 평수를 늘리지 않고 그저 있던 만큼의 식탁과 의자를 둘 수 있는 공간으로 잡았다는 점, 쓰던 항아리에 접시까지 모두 그대로라는 점.

30 년 넘게 지켜 본 열차집 주인장은 주당들의 변천사를 술술 말해준다.

“소주가 약해져서 그런 건지, 사람이 변한 건지…. 그전에는 도수가 훨씬 센 소주를 먹고도 끄떡 않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약해진 소주를 마시고도 옛 사람들만 못해. 금새 취하고, 힘들어들 하더라고.”

옛날에는 따로 왔다가 친구가 되어 돌아가기도 하고, 함께 왔다가 치고 받고 싸우고는 다시 다음날 어깨동무하고 나타나는 주당들이 자주 있었다. 몇몇 단골들이 늘 터를 잡고 속속 밀려드는 주당들이 거기에 더해져 열차집은 항상 시끌벅적 했는데.

“그전에는 없이 살아도 먹는데 정이 있었어. 시골에서도 동네에 거지가 있으면 집집마다 부족한 끼니였어도 그 사람을 위해 남겨줬다고.”

싸워도 곧 훌훌 털고 탁주 사발을 기울이던, 내것 네것 구분 없이 자리를 한데 뭉쳐 웃고 마시던 그 시절에 비해 조용해진 분위기는 취재를 위해 찾은 당일에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주인장과 눈인사를 나누고 들어서는 단골이 두어 테이블, 오랜 맛집을 검색해서 온 듯 들떠 보이는 젊은 커플이 한 테이블, 퇴근 길에 목을 축이러 들어온 것 같은 3040들이 각자의 식탁만큼, 각자의 자리만큼만 목소리를 조절하고, 옆 사람을 배려하고, 비교적 조용히 먹고 마신다. 시대에 따라 정서도, 소주 도수도 이렇게 바뀐 것이다.

“남남이 만나서 우두커니 있어봐. 이야기가 아무리 맛나도 한 순간이지, 그게 뭐 오래도록 재미가 있나. 그저 따끈한 거 하나 지져서 가운데 두고 속 든든하게 해주는 탁주 한 사발 두면 시간이 술술 잘도 가지.”

깨끗한 재료로 만드는 변함없는 맛, 단골들이 만들어내는 끈끈한 분위기에 더해 윤해순 사장의 사랑방 마음은 외롭고 지친 우리가 여전히 열차집으로 찾아 들게 만드는 이유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atgamsa@gmail.com

사진=임우석 imwoo5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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