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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송 비속어와 언론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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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방송 비속어와 언론자유

입력
2010.08.1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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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상파 방송 3사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마다 비속어와 인격 모독, 폭력적 표현이 난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국어원이 6월 한 달간, 여러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총 11 회분 방송내용을 조사한 결과, 품격 낮은 방송언어 표현이 모두 844건이나 사용된 것으로 집계됐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뭐야! 이 노비 같은 X는," "생긴 거는 풀 뜯어먹게 생겨 가지고," "나 몰라라 쌩 까면 어떡하라는 거예요"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방송의 비속어 사용금지가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법원 판결을 놓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지난달 뉴욕의 연방 항소법원은 외설적 표현이나 비속어 사용을 금지한 연방연방통신위원회(FCC)의 규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폭스(FOX) 방송국이 제기한 소송에서 "FCC규정은 너무 모호해 언론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관련 규정을 재검토하라고 판결했다.

FCC는 1975년부터 방송에서 성행위와 성기, 배설물 등과 관련된 외설적 표현과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방송국에는 무거운 벌금을 물리고 있다. FCC는 1987년까지는 방송에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비속어 7개를 특정했다. 그러나 이 금지규정을 피해가는 비속어와 외설적 표현이 끊임없이 새로이 등장하자 포괄적 금지 규정으로 대체했다. 이에 대해 연방 항소법원은 비속어와 외설적 표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나 지침 없이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언론사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수정헌법1조에도 위배된다고 판시한 것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비속어나 외설적 표현을 FCC가 구체적으로 명시하라는 법원 판결은 끊임없이 새로운 외설적 표현과 비속어가 등장하고 사용되는 현실과는 어긋난다. 법원의 권고를 그대로 따른다면, FCC는 수시로 새로운 사용금지 비속어 목록을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록 에 적시되는 비속어와 외설적 표현의 숫자는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과거 FCC가 사용금지 비속어 7개를 특정하자, 방송 출연자들은 새로운 비속어와 외설적 표현을 만들어 사용해 교묘하게 금지 규정을 피해갔다.

이번 판결에 대해 언론자유를 옹호하는 쪽은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다. 반면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과 언론ㆍ시민단체들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방송의 비속어나 외설적 표현에 24시간 무방비로 노출돼 자녀 교육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되었다며 FCC와 정부에 즉각 상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원래 표현의 자유는 정치와 자본, 그리고 사회 권력에 대한 일반인들의 자유로운 비판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범위가 점차 확대돼 왔고, 사회적 논란도 계속돼 왔다. 권력기관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보장하기 위한 표현의 자유는 제한 없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한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사회 전체와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경우, 그 표현의 자유는 제한돼야 한다. 청소년들을 포함한 우리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생각할 때, 방송에서의 외설적 표현과 비속어 사용은 제한돼야 할 표현의 자유 중 하나이다.

최진봉 미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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