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불안으로 엔화 가치가 날로 치솟고 있다. 일각에선 ‘슈퍼엔고’란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 그렇지 않아도 힘든 일본경제는 설상가상의 충격을 받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런던 외환시장에서 15년 만에 마침내 ‘1달러=85엔’벽을 깨고 달러당 84.72엔까지 하락했던 엔ㆍ달러환율(엔화가치 상승)은 12일 도쿄(東京)시장에서도 내내 84엔대 후반~85엔대 초반을 오갔다.
사실 일본 경제는 지금 ‘잃어버린 10년’이후 가장 어려운 디플레이션 국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펀더멘털과는 무관하게 엔화 가치가 폭등하는 것은 미국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갈수록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미국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 완화 정책의 지속을 결정하자 미국의 장기금리는 더 떨어졌고, 결국 금리차이가 별로 없으면서 ‘상대적으로’ 달러화보다 안전하다고 인식된 일본 엔화로 돈이 몰리게 된 것이다.
일본 경제로선 엔고가 결코 반갑지 않은 상황. 경기회복을 위해선 엔화가 절하되어야 할 판에, 거꾸로 절상이 되고 있어 경기침체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자동차, 전기ㆍ전자, 기계 등 일본의 수출주력기업들은 이미 비상이 걸린 상태다. 도요타, 소니 등 대부분 기업들이 금년도 영업계획에서 책정한 환율예상치는 달러당 87~90엔 정도. 이미 적정선이 무너진 셈이다. 노무라(野村)증권금융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달러당 1엔 오를 경우 일본의 자동차 주요 7개사의 이익은 700억엔 정도 줄어든다. 기업의 실적 악화는 당장 주가 하락은 물론 고용 불안을 부르는 등 경제 전반에 영향을 끼치면서 일본의 경제회복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이날 닛케이(日經)평균주가는 전날보다 0.86% 떨어지며 5일 연속 하락행진을 이어갔고 개장 초 엔화가 84엔대를 내려갔을 때엔 일시적으로 연중 최저치를 나타내기도 했다.
일본 금융시장에서는 더 이상의 엔고를 막기 위해 당국이 시장개입에 나서거나 추가금융완화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휴가 중인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도 이날 “(환율) 움직임이 너무 급하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문제는 일본은행이 시장개입에 나선다 해도 엔고 흐름자체를 역류시키기엔 역부족이란 데 있다. 한 시장관계자는 “미국이 경기회복을 위해 달러약세를 용인하는 상황에서 일본은행이 시장에 개입하기는 힘든 상황”이라며 “일본은행의 금융완화책 역시 Fed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금세 효과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일본이 의도하지 않은 엔고인 만큼 묘책이 없으며, 당분간 디플레 상황임에도 환율까지 추락하는 곤혹스런 상황을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도쿄=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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