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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구룡포 5리의 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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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구룡포 5리의 밤이 있어

입력
2010.08.1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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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포 5리의 밤'이란 시를 아프게 쓴 적이 있지요. 십수 년 전의 일이지요. 구룡포에 처음 찾아간 것은 겨울 저녁이었지요. 남루한 적산가옥 50여 채가 즐비한 포구 뒷골목에 방을 구했지요. 낡고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간 3층, 작은 다다미방이었지요.

그 골목에는 해방 이전의 시간이 고여 있었지요. 바다 쪽으로 난 창문 밖으로 촉수가 낮은 파리한 조각달이 백열등처럼 켜져 있었고, 원고지를 머리맡에 두고 저는 추위보다는 그 골목이 주는 오묘한 한기에 몸을 떨었지요.

밤새 잠들지 못하며 내 전생이 그 시간에 머물고 있는 듯한 환상에 아득해졌지요. 메밀묵 장수가 '메밀묵 사려'를 외치며 더 깊은 골목으로 휘어지며 사라졌지요. 주인에게 그곳의 주소를 물었는데, 구룡포 5리라고 했지요. 그 뒤로 저는 구룡포 5리를 사랑하게 되었지요. 구룡포 5리는 세월의 속도를 이기지 못했지요. 그냥 그대로 먼지로 주저앉아버릴 것 같았지요. 주소도 구룡포읍 장안동으로 변했지요.

뒤늦게 구룡포 5리의 가치를 안 그곳 사람들이 10여 채 남은 적산가옥의 원형을 지키고 되살리는 일을 시작했지요. 얼마 전 그 적산가옥에 찻집이 만들어졌다는 소식, 구룡포에 사는 좋은 시인에게 들었지요.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가을이 오면 맨 먼저 찾아갈 마음의 주소로 남겨 두었지요. 당신과 함께 떠나고 싶은.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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