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의 고요. 제4호 태풍 '뎬무'가 북상하던 10일 오후 7시50분 서울 동작구 기상청 2층의 국가기상센터는 적막했다. 기상청 예보관 11명은 숨죽인 채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굵어진 빗줄기에 귀가를 재촉하는 발걸음이 거리를 메웠지만 뎬무의 한반도상륙 10여 시간을 앞둔 기상청은 '태풍비상근무'에 돌입했다. 태풍의 궤적을 추적해 향후 경로를 예상하고 시시각각 특보를 결정해 알리기 위해 예보관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후 8시 화상회의
"18시 현재 태풍은 전남 서해안을 향하고 있습니다. 내일 새벽 3시면 전북까지 강풍 반경에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전준모 총괄예보관·서울)
"내륙 상륙 시간은 아침 6시로 보이는데요. 위치는 전남 해남 완도 강진 인근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김태룡 국가태풍센터장·제주)
"광주에선 이미 북동풍 풍속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4대강 살리기 공사현장 17곳에 실시간으로 상황을 알리고 있습니다."(최치영 광주기상청장·광주)
태풍맞이는 전국의 지방기상청이 연결된 화상회의로 시작됐다. 20분간 열린 열띤 정보공유의 장이었다. 국가 위험기상 예보의 총사령부인 국가기상센터는 충북 오창의 국가기상슈퍼컴퓨터센터의 자료, 각 지역 기상청과 제주 한라산 중턱에 있는 국가태풍센터의 판단 등을 1차 종합하고 즉각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회의 도중 서울에서 폭우로 인한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센터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오는 태풍을 막을 수야 없겠지만 정확하게 예보해 피해를 최대한 막아보자는 것이 태풍비상근무의 목표, 예보관들은 신경을 더욱 곤두세웠다.
특히 태풍방어의 총사령관 격인 진기범 예보국장과 25년 경력의 예보 베테랑 전준모 총괄예보관은 한반도 주변의 기압, 바람의 방향, 세기, 각 지역의 강수량을 고려해 태풍의 위치를 가늠하느라 일기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진 국장은 "태풍은 기압의 골짜기 사이로 움직이는 특성이 있어 기압계만 주시해도 큰 틀의 예측은 가능하다"고 했다.
밤 11시 특보 발령, "신속하게 그러나 신중하게"
갑자기 진 국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태풍의 중심이 서귀포 서쪽 50㎞까지 접근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서두르세요. 예보를 보고 대응하는 사람들에게 10분이란 시간은 대피를 하고 못하고의 차이입니다." 신속한 예보가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밤 11시20분 경남과 전남 일부에 태풍경보를 발표했다. 기상특보는 위험상황에서 꼭 제때 신중하게 발표돼야 한다. 특보는 많은 직원들이 대기근무를 해야 하는 일선 행정관청 등에선 강력한 규제로 받아들여지는데, 특보를 남발하면 자칫 대응이 필요할 때 피해현장에서 일할 손이 없는 사태가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자정께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지방기상청을 통해 비가 오지 않는데 왜 호우주의보를 해제하지 않느냐고 불평을 했다. 그러나 예보관들은 단호하게 "태풍이 북쪽으로 방향을 틀면 언제 구름이 발달할지 모르니 경각심을 가져주세요"라고 했다.
새벽 4시45분 "바람이 이상하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진 국장의 입에서 "어, 이상하다"는 말이 새나왔다. "총괄예보관, 빨리 고흥반도쪽 바람 분석 좀 해보세요. 5분 전하고 다른데. 태풍이 거의 남해안에 바싹 붙었잖아. 국가태풍센터 나오세요."
태풍은 오른쪽 반경에 바람을 몰고 다니기 때문에 전남 고흥군 고흥반도 남부 도화면의 바람이 잦아들었다는 건 이미 태풍의 중심이 이곳을 지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예상보다 동쪽으로 치우쳐 한반도에 상륙하기 시작한 태풍의 움직임을 놓칠 뻔한 상황을 베테랑 예보관의 직관으로 포착한 순간이었다. 기상청은 수분 뒤 "오늘 5시경 도화면 부근 해안으로 뎬무가 상륙했다"고 관계기관에 발표할 수 있었다.
다행히 일부 사고를 빼곤 큰 피해도 없었다. 11일 오전 8시 근무교대회의에서 "기상청과 방재기관의 유기적 협력으로 지리산 인근 야영객 287명 대피" 등의 보고가 이어지자 모두 가슴을 쓸어 내렸다. 예보팀의 막내 권신혜(27) 예보관은 "돌발상황을 미리 알려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점이 예보 업무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뎬무는 이날 오후 1시50분께 울산시 방어진 동쪽 해상으로 빠져나갔다. 예보 종료! 예보관들은 가족 품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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