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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1> 취리히 - 금융과 예술의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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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소프트시티를 가다] <11> 취리히 - 금융과 예술의 행복한 동행

입력
2010.08.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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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6만명에 불과하지만 스위스 최대의 도시인 취리히는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머서 휴먼 리소스 컨설팅이 2002~2008년 7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은 곳이다. 기업하기에도 편리하고 여가생활을 즐길 곳도 많으며 아이들을 키우기에도 좋은 도시라는 것이 선정 이유다. 원래 취리히는 취리히호(湖)의 수운을 이용해 남부 이탈리아와 독일과 프랑스의 교역을 중개하던, 유럽에서도 가난한 축에 속하던 작은 무역도시였다. 그러다 19세기 중반 스위스은행을 필두로 세계적인 금융ㆍ보험회사들이 이곳에 자리잡으며 전성기를 맞는다. 그리고 이제 취리히는 금융도시로서 축적한 부를 인간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재투자하면서 뉴욕이나 파리 못지않은 세계적 예술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취리히 중앙역과 취리히 호수를 남북으로 잇는 반호프 거리의 파라데 광장. 광장 주변은 온통 금융회사 건물이다. 스위스의 대표 은행인 스위스은행과 유비에스(UBS)는 물론, 홍콩의 세계적 금융회사인 홍콩상하이은행(HSBC) 건물 등이 광장을 에워싸고 있다. 네덜란드의 아베엔 암로 은행, 독일의 알리안츠 보험회사 같은 굴지의 금융회사 건물도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한눈에 들어온다.

묵묵히 전통을 증언하는 이들 건물의 고풍스런 외관에서는 강렬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스위스은행 본점은 1876년, 유비에스 본점은 1899년에 반호프 거리에 들어선 뒤 지금까지 이 자리를 지켜왔다. 이 건물들이야말로 “바닥에는 금을 깔아놓았고 지하에 땅을 파고 들어가면 돈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취리히를 가본 사람들이 한다는 농담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부와 명성을 쌓아온 취리히 신화의 산 증인이다.

최근 땅값이 크게 오르면서 반호프 거리의 금융기관들은 시 외곽에 지점을 낸 뒤 그곳에서 주로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래서 요즘 반호프 거리에서는 상징적인 업무만 하는 금융회사도 꽤 많다. 취리히 금융의 선구자로 불리는 알프레드 에셔(1819~1882)가 1876년 첫 창구를 열었던 스위스은행 본점은 지금 옛 전설이 아니라 건물 속에 입점한 화려한 부티크와 레스토랑, 커피숍들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든다.

이 때문에 “반호프 거리는 이제 옛 명성이나 팔아먹고 산다”는 비아냥이 들리기도 하지만 누구도 은행 간판을 떼어내자거나 건물을 다시 짓자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스위스취리히연방공과대(ETH) 연구원인 도시계획가 마티나 바움은 “오래된 건물의 보존은 전통과 보안을 중시하는 은행의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준다”며 “취리히는 오랫동안 경제, 문화, 정치 등 여러 측면에서 정체성 변신을 모색해 왔지만 파라데 광장의 건물들이 상징하는 금융도시로서의 정체성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기관이 취리히의 얼굴이라면 도시의 골목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150여개의 미술관과 전시장, 갤러리 같은 문화공간은 취리히의 예술적 정체성을 상징한다. 도심 동쪽 림마트강 기슭에 자리한 쿤스트하우스, 팝아트 전문 갤러리 마이36, 스위스 태생의 세계적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생애 마지막으로 설계한 하이디베버 뮤지엄 등은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은행가들뿐 아니라 전세계의 예술 애호가들이 왜 취리히에 모여드는지를 설명해준다.

특기할 만한 것은 금융기관과 예술ㆍ문화공간의 상생이 취리히에서는 일상적이라는 것. 취리히웨스트 지역의 대표적 문화공간인 쿤스트할레 취리히는 유명 보험회사인 스위스레가 후원자이고, 슈펙타켈 극장과 여름극장의 후원은 취리히칸톤은행이 맡고 있다. 쿤스트할레 취리히 홍보담당자인 이사벨라 메시나는 “예술과 문화 분야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관심은 매우 적극적”이라며 “이런 관심이야말로 우리가 대중들에게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반호프 거리가 지난 한 세기 동안 은행ㆍ보험업으로 명성을 쌓은 부르주아들의 공간이었다면 취리히역 서쪽의 웨스트취리히 지역은 조선소, 맥주공장, 장비공장 등이 즐비했던 노동자들의 구역이었다. 산업지대였던 이곳을 가로지르는 림마트 거리에는 노동자들 특유의 하위문화가 꽃피기도 했다. 그러나 인건비 상승으로 1980년대 후반 공장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4만여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자 “활력을 잃고 텅 빈 이 지역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던져졌다.

이 물음에 가장 먼저 응답한 이들은 예술가들이었다. 방치돼있던 맥주회사 뢰벤브로이 양조장에 젊은 예술가들이 들어와 작업공간으로 쓰면서 변신이 시작됐다. 이곳이 예술가들이 모이는 장소라고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자 스위스의 대형 유통회사인 미그로는 이 공장 건물을 사들여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 1995년에는 취리히의 대표적 전시공간인 쿤스트할레 취리히도 이 공장 건물 안으로 이전했다.

현재 미그로미술관과 쿤스트할레 취리히 외에도 5개의 갤러리가 이 건물 안에 들어있는데, 20~30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 위주로 전시를 꾸미는 것이 특징이다. 베른시에 거주하지만 두 달에 한 번 꼴로 취리히의 미그로미술관을 찾는다는 그래픽디자이너 케빈 묄러는 “유럽 여러 도시에 폐공장을 재활용한 전시공간이 생겨났지만 이곳은 7개나 되는 전시공간에서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차별성이 있다”고 말했다.

예술가적 영감으로 발상을 전환하면서 웨스트취리히 지역은 취리히의 새로운 활력이되고 있다. 조선소를 극장, 재즈클럽, 레스토랑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개조한 쉬프바우, 폐선된 철도의 교각 아래 50여개의 바와 클럽, 캐주얼한 부티크 등이 모여있는 비아둑트 거리 조성 등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마치 서울의 홍대 앞을 연상케 하는 비아둑트 거리의 커피숍 직원 라모나 볼츠리는 “문을 연 지 2~3개월밖에 안됐지만 주말이면 50여 개 테이블이 있는 가게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며 “자유분방하고 색다른 분위기를 즐기려는 젊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주로 찾는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금융도시로서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예술도시로의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취리히 시 당국을 고무시키고 있다. 취리히 시의 올해 문화ㆍ예술 분야 예산은 7,300만 스위스프랑(약 800억원). 시 전체 예산의 1.5% 정도로, 15년째 증가 추세다. 베아트리체 에비 우르벤 취리히 시 지역개발부장은 “지역 자체를 예술적 공간으로 꾸민다는 것은 단순히 멋진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금융과 예술, 금융과 문화의 결합은 취리히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취리히= 글ㆍ사진 이왕구기자 fab4@hk.co.kr

■ 취리히, 도시계획에도 직접민주주의

취리히의 도시계획은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스위스는 지역ㆍ주ㆍ연방 단위로 일정한 예산을 초과하는 사업에 관해서는 의무적으로 직접투표를 실시한다. 각종 사안에 대한 투표는 1년에 최소한 4차례씩 이뤄진다. 도시행정가들은 따라서 도시계획을 세울 때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는 여러가지 시스템을 마련해놓고 있다.

예를 들어 취리히웨스트 지역은 트램 노선의 신설 여부를 놓고 2007년 9월 투표를 실시했다. 주민들의 의견은 팽팽히 맞섰지만 투표 결과가 큰 후유증을 남기지는 않았다. 시가 마련해준 ‘인포센터’가 공론의 장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 인포센터에서 5~6개월간 매주 30~40명의 주민들이 찬반 토론을 거듭했고 투표 결과에 승복할 수 있었다.

취리히 시민들은 이처럼 이해가 엇갈리는 사안이 발생하면 “공동의 해결책은 무엇인가를 토론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의 의견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서로 의견을 좁히기 어려울 때 투표를 하지만 토론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 해법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취리히 시민들은 이런 토론과 의견 수렴의 과정을 비유적으로 ‘에효라움(echoraumㆍ메아리의 공간)’이라고 표현한다.

이왕구기자

■ 인터뷰/ 베티나 부르크하르트 취리히 시 공공미술작업그룹실장

“작품이 도시를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점보다는 작품이 사회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하는 점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베티나 부르크하르트 취리히 시 공공미술작업그룹실장은 공공미술 작품의 새로운 메카로서 취리히의 미래를 낙관했다. 공공미술작업그룹실은 미술작가와 도시행정가 11명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취리히 시 공공미술 정책을 주도하는 조직이다. 공공미술에 대한 취리히 시의 관심은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20년 정도 뒤처졌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시에 공공미술 담당 부서가 생긴 것도 겨우 5년 전이다. 하지만 그는 “뒤늦은 출발은 약점일수도 있지만 다른 도시의 장점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장점도 된다”고 말했다.

“공공미술은 전복적 시각으로 시민들 자신과 도시를 들여다봄으로써 스스로를 더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그는 “취리히에도 일상적 사고에 충격을 가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공공미술 작품들이 곳곳에 숨어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취리히 도심 림마트강 위의 퀘 다리에는 교각 난간 일부를 도금한 ‘Le Rien En Or(금으로 됐으나 아무 것도 아닌)’이라는 작품이 설치돼 있다. 어지간한 눈썰미가 없으면 그저 다리 난간이려니 하고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작품. 그러나 이 작품은 사실 금융도시인 취리히의 황금만능주의를 풍자하고 있다. 또한 림마트강변 3곳에는 바닷가 포구를 연상시키는 공공미술 작품들이 설치돼 있는데 이는 취리히가 호숫가 도시가 아니라 바닷가 도시라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는 “대개가 현대미술 작품인 공공미술 작품에 대해 일반인들은 ‘잘 모르겠다’고 말하곤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며 “현대미술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취리히에서 대중과 현대미술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취리히=이왕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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