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4호 태풍의 이름은 '매미'였다. 매미는 슈퍼 태풍이었다.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중 최상급이었다. 상륙 당시 최대풍속 초당 75m, 태풍의 크기가 반경 460㎞였다. 매미는 경상도 지역을 직접 강타했다. 나는 9월13일 은현리에서 태풍 매미의 펀치를 맞았다.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당에 뿌리내린 지 10년이 넘는 벚나무를 단숨에 눕혀버리던 태풍의 힘을 보았다. 전원의 나무울타리를 피아노 건반처럼 두들기다 부숴버리던 태풍의 손을 보았다. 전신주는 나무처럼 쓰러졌다. 나무는 나무젓가락처럼 찢어졌다.
바람에 유리창이 깨어지고 폭우에 지붕에서 물이 줄줄 샜다. 정전으로 세상은 깜깜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나는 신의 이름을 불렀지만 높다란 교회 십자가도 황금부처를 모신 절집의 기와도 산산조각이 난 다음이었다. 도시에서는 화려한 간판이 휴지처럼 구겨져 날아가 버렸다.
신호등이 날아갔다. 사람이 세운 것은 모두 헛것이었다. 바람이 한 꺼풀 벗기자 모두 상처투성이의 알몸이었다. 아침이 오고 바람은 떠나갔다. 그때 나는 보았다. 폐허뿐인 상처 위에 가녀린 억새는 부러진 손가락 하나 없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사람의 폐허가 아닌 신의 땅에서 가을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사람의 문명, 가녀린 억새보다 강하지 못했다. 태풍이 지나간 아침,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또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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