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강제병합 관련 일본 총리담화가 발표되기까지 막후에서 한일 의원 외교가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상득 한일의원연맹회장이, 일본에서는 하토야마(鳩山) 전 총리가 담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요미우리(讀賣) 아사히(朝日)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담화 내용을 놓고 일본과 사전 협의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분주하게 움직인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으로 한일의원연맹 한국 측 회장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었다.
이 전 부의장은 지난 7월 한국을 방문한 와타나베 고조(渡部恒三) 한일의원연맹 일본 측 회장에게 “전향적인 총리담화가 나오면 동생(이 대통령)은 역사인식 문제에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 전 부의장은 7월 말 일본을 방문해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과 만나 담화 내용을 논의했고 이 자리에서 다시 “무라야마(村山)담화를 넘어서는 진전된 표현”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면서 정치권의 한일통로가 제한돼 있어 결국 한국 측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된 것은 발표 시기 정도다. 7월 말 방한한 일본의 민주당 의원에게 한국 정부 고위 관리는 “(담화를)낸다면 8월15일 이전에 하라”며 “(광복절)대통령 연설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측에서는 총리 대변인으로 한일 과거사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센고쿠 장관과 함께 하토야마 전 총리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재임 중 담화 발표를 구상했고 6월 초 사임하면서 간 총리에게 이를 인계했다. 10일에는 기자들에게 담화 발표 며칠 전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와 센고쿠 장관의 상담 요청을 받고 “‘한국민 여러분의 뜻에 맞지 않는 형태로’라는 문구를 넣으면 어떠냐”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의 조언대로 총리담화에는 처음으로 한일병합이 강제적이었다는 인식을 담은 “한국민의 뜻에 반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간 총리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편이었고, 총리담화 발표 4, 5일 전까지도 담화를 낼지 망설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담화는 외무성이 마련한 초안을 간 총리와 관방장관ㆍ부장관 등 모두 4명이 제각각 수정했고 특히 센고쿠 장관은 몇 차례 직접 문장을 고쳤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도쿄=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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