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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과학 아는 엄마 기자]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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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과학 아는 엄마 기자] 모래

입력
2010.08.1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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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수영복 차림으로 바닷가에 섰다. 얼마만인지 헤아려보니 신혼여행 후 처음이다. 국내 바닷가로 치면 대학졸업 후 처음이지 싶다. 대학생 땐 바닷가를 친구들과 함께 갔지만 이번엔 남편과 아이가 동행했다. 내 상황은 많이 달라졌지만 바닷가 풍경은 여전했다. 조금 센티멘털해진 엄마와 달리 30개월 된 우리 아이는 모래사장과 바다를 오가며 물 만난 물고기처럼 원없이 놀았다.

물속에서 나온 아이를 잠시 쉬게 할 겸 모래사장에 앉혔다. 아이 옆에서 마른 모래를 한 움큼씩 집어 한 곳에 계속 떨어뜨렸다. 위에서 떨어지는 모래알이 바닥에 쌓이면서 원뿔모양 모래더미가 만들어지자 아이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 위에 모래알을 계속 떨어뜨렸다. 모래원뿔 모선의 기울기가 점점 가팔라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무너질 거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는지 아이는 금방 울상이 돼 다시 만들어달라며 칭얼댔다.

모래더미가 무너져 내린 순간을 물리학에서는 임계점이라고 부른다. 작은 변화가 계속되다 처음과 전혀 다른 상태로 바뀌게 되는 순간을 뜻한다. 물이 끓는 과정을 떠올리면 이해가 좀더 쉽다. 주전자에 물을 담고 가열하면 온도가 점점 올라가다 100도가 되는 순간 끓기 시작한다. 100도가 바로 임계점이다.

물과 모래더미의 임계점은 다르다. 물이 임계점에 도달하려면 온도가 변해야 한다. 온도는 외부에서 임의로 변화시킬 수 있다. 가열을 세게 할 수도, 살살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모래더미의 기울기는 모래알을 떨어뜨리는 사람이 바꾸는 게 아니다. 모래의 크기나 모양, 무게, 떨어지는 높이 등에 따라 저절로 결정된다. 모래더미 스스로 임계점에 다다른다는 얘기다. 물리학자들은 이 과정을 물과 구분해 ‘자기조직 임계현상’이라고 부른다.

자기조직 임계현상은 우리 주변에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물리학 분야의 국제학술지 ‘네이처 피직스’에는 비가 오는 것도 자기조직 임계현상이라는 미국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지상이나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대기 중으로 계속 유입되다 더 이상 추가로 유입되지 못할 정도까지 포화되면 비가 내리게 된다. 이 순간은 사람은 물론 수증기 공급원도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한다. 대기에서 자체적으로 정해진다.

사람 감정도 어찌 보면 자기조직 임계현상의 하나다. 스트레스나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떤 말이나 사건을 계기로 갑자기 폭발한다.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임계점을 넘은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경험이 더 잦아진다.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아이에게 참다참다 나도 모르게 버럭 화를 내곤 돌아서 미안해한 적이 셀 수 없다. 화가 폭발하는 그 순간은 감정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 같다. 아이가 더 자라면 임계점을 내 이성이 조절할 수 있을까.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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