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를 살 때 보통 1++, 1+, 1, 2, 3, D 등 6단계 육질등급으로 품질을 판단하게 마련이다. 이 같은 등급제는 들쭉날쭉한 한우값과 거래의 기준을 정하기 위해 1992년 처음 도입됐다. 등급제 정착으로 한우 유통은 선진화됐지만 소비자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등급제가 일부 부위에만 적용되는데다 소비자에게 정말 도움되는 요리법이나 맛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만을 개선하려고 과학자들이 팔을 걷어 붙이고 쇠고기 맛을 미리 알아내는 기법을 개발했다. 이르면 9월 말 2~4개의 한우 브랜드가 이 같은 맛 등급을 적용한 한우를 유통할 예정이다.
등심ㆍ안심 등 5개 부위만 육질등급 판정
지금의 육질등급은 소를 도축한 뒤 목부터 13번째 등골뼈(척추) 마디와 요추 사이 등심 부위를 척추에 수직 방향으로 잘라, 그 단면에서 피하지방 두께와 색깔, 근내 지방 함량(마블링), 조직감(탄력) 등을 확인해 판정된다. 등급판정 확인서를 반드시 표시해야 하는 부위는 등심과 채끝, 안심, 양지, 갈비 등 5가지다. 다른 부위는 자율적으로 육질등급을 표시하게 돼 있어 대부분 이들 5가지 부위 등급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마트나 정육점에서 소비자가 쉽게 접하는 한우는 대부분 1등급 이상이다. 육질등급이 비슷한 고기 중 소비자는 대부분 선호하는 브랜드나 요리에 필요한 부위를 중심으로 고르게 된다. 브랜드나 부위를 잘 모르면 “국거리 주세요”나 “구워먹기엔 어떤 게 좋은가요”라고 판매자에게 선택을 맡기게 된다. 간혹 국거리용, 스테이크용 등으로 조리법을 명시해 놓은 정육점도 있지만 제대로 된 기준없이 판매자가 임의로 적은 경우가 많다.
쇠고기 부위는 육질등급을 표시하는 5가지를 포함해 목심, 우둔, 앞다리, 설도, 사태 등 10가지 부위(대분할)로 크게 나뉜다. 이를 다시 세부적으로 나누면(소분할) 39가지 부위가 된다. 부위마다 적합한 요리법이나 특성도 다르다. 육질등급을 매기는 일부 부위를 중심으로 쇠고기가 유통되다 보니 소비되는 부위가 편중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육즙ㆍ연한 정도ㆍ향미가 맛 결정
쇠고기 맛을 좌우하는 요인은 육즙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다즙성)와 질기고 연한 정도(연도), 향미(香味ㆍ후각과 미각으로 느끼는 고기냄새) 등 3가지다. 세계 공통의 척도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은 2001~2002, 2006~2009년 두 차례에 걸쳐 한우 84마리를 3만2,200명에게 부위별로 다양하게 요리해 시식하게 한 다음 다즙성과 연도, 향미, 기호도, 만족도 등으로 나눠 점수로 평가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부위별 특성이나 요리법에 따라 맛 등급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육질등급의 판정기준인 피하지방 색깔과 조직감은 맛과 별 관련이 없다. 대신 골화도가 연도와 향미를, 등심의 수소이온농도(pH)가 다즙성을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게 확인됐다. 골화도는 뼈가 얼마나 나이 들었는지를 뜻한다. 사람처럼 소도 나이 들수록 뼈조직이 엉성해진다(골화도 상승). 골화도가 높은 소일수록 고기에서 기름기와 수분이 많이 빠져나가 질기고 향미도 떨어진다.
소 근육 내부의 pH는 수분 함량과 관계 있다. pH가 높다는 건 수분을 많이 붙잡고 있어 육즙이 풍부하다는 얘기다. pH가 낮으면 칼로 써는 것 같은 약간의 물리적 충격만 줘도 육즙이 새 나와 구우면 뻑뻑해진다. pH가 너무 높으면 고기가 생생한 붉은색이 아니라 탁한 검붉은색을 띤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도축된 소의 등심 pH는 5.3~5.6 정도다.
이밖에 숙성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연도와 다즙성, 향미 등에 영향을 준다. 도축 직후 쇠고기를 진공 포장해 4도 이하 냉장 보관하면 근육조직을 잇는 근절 부위가 단백질분해효소에 의해 끊어진다. 고기가 연해진다는 소리다. 조수현 농촌진흥청 축산물이용과 연구사는 “갓 잡은 쇠고기가 맛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도축 후 48시간까지는 사후강직이 일어나 질긴 상태”라며 “홍두깨나 설깃(뒷다리 바깥쪽 엉덩이 부분) 보섭처럼 소비자가 많이 찾지 않는 질긴 부위도 숙성을 거치면 육질이 훨씬 좋아진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설도의 일부인 보섭은 질겨 주로 갈아 먹거나 국거리로 쓰지만 1등급 기준으로 3주 이상 숙성하면 아주 부드러워져 스테이크로도 먹을 수 있다.
부위ㆍ레시피별 얼마나 맛있나
연구팀은 소비자 조사로 만든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한우 맛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생산현장에서 한우 몸무게와 골화도(나이), 등심 피하지방 두께, 근내 지방도, pH, 부위, 숙성 온도와 기간 등과 같은 여러 정보를 입력하면 스테이크와 구이, 탕 등으로 요리했을 때 얼마나 맛있는지를 ‘대단히 우수’, ‘매우 우수’, ‘우수’ 등으로 예측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개발결과는 이달 16~20일 제주에서 열리는 국제식육과학기술대회에서 발표된다. 조 연구사는 “부위와 요리법에 따라 세부적으로 맛 등급을 매기므로 소비자가 원하는 고기를 편리하게 고를 수 있고, 현행 육질등급제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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