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으로 미국에 있는 동안 대학 수업을 하나 청강했다. 이라는 과목이다. 도덕과 법의 복잡한 관계와 법철학과 윤리학의 질문들이 수없이 오갔다. 한국사 전공자가 웬 법철학 수업이냐고 미국 친구가 놀렸지만 수확이 없지 않았다.
몇 가지 책을 소개받았는데, 마이클 샌델 교수의 , 를 흥미 있게 읽었다. 그는 서구 전통에서 정의를 다루는 세 가지 입장을 구체적 예화를 곁들이면서 설명해 독자를 빠져들게 했다. 대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개인의 자유를 우선하는 자유주의, 공동체의 미덕과 공동선을 강조하는 입장의 장ㆍ단점을 소개하고, 독자들의 가치관과 정치적 입장 혹은 도덕적 판단에 따라 어떤 취사 선택이 가능한지 안내한다.
한국에서도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라고 들었다. 한국인들이 사회를 보다 정의롭게 만들려는 의지가 강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국사회가 정의롭지 못한 일이 너무 많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현재 한국인들이 '정의'를 절실히 원하는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샌델은 무엇이 옳은가를 질문하면, 적법성 여부를 넘어서 늘 도덕적 판단과 연결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태풍 수재(水災) 지역에서 남의 고통과 절박함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는 장사꾼을 단지 시장이 결정할 일이라고 놔둘 수 있는가? 범죄를 저지른 형제를 고발하지 않은 형이 옳은가, 아니면 고발한 동생이 옳은가? 적을 공격하기 위해 군인은 무고한 양민도 죽일 수 있는가? 수십 년 전 한국을 강제 합병하여 고통에 빠뜨린 일본인들의 잘못을 왜 그 후손들이 사과해야 하는가? 책에 소개되어 있는 수많은 문제는 우리도 충분히 다시 질문할 만한 것들이다.
샌델은 서구 전통의 경험 속에서 이런 난제들을 해결하려는 입장과 방법을 쉽고 요령 있게 설명한다. 정의를 갈구하고 고민하는 우리에게 고마운 일이고 좋은 참고서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 진짜 절실한 과제가 남았다. 과연 우리 전통 속에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알아보는 일이다. 앞의 난제들은 해당 사회의 법과 도덕적 전통 속에서 제기되고 해결되었다. 샌델은 서구사회가 봉착한 난제들을 풀어나간 전통과 해법을 탐색하였지, 우리 문제를 해결하려던 게 아니다. 그의 책은 훌륭한 참조가 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공자는 도둑질한 아버지를 고발하지 않은 자식이야말로 올바르다고 칭찬했다. 조선 초 일부 학자는 전쟁에 나가면서 부인과 자식을 죽인 계백 장군의 행동이 과연 올바른지 토론하였다. 청나라의 공격에 끝까지 저항하는 것이 옳은지, 항복하는 것이 옳은지 국가의 사활을 건 논쟁이 있었다. 보리 한 줌을 두고 동생과 다툰 형을 인륜에 어긋난다며 때려죽인 이웃을 정조(正祖)는 진정 올바름이 무엇인지 아는 자라고 칭찬했지만, 일부 관료는 살인자를 살려둘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런 문제를 둘러싼 옳고 그름의 판단은 현재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샌델이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자극하고 격려하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우리의 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 법과 도덕적 판단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그러한 전통은 올바른 삶과 부당함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형성해왔는지 탐구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야말로 한국을 더욱 정의롭게 만드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김호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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