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 정부가 10일 발표할 총리담화는 큰 틀에서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1995년 무라야마(村山)담화를 재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껏 새 담화를 발표해놓고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고민 끝에 한국 측에서 요구해온 문화재 반환을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담화의 기조라고 할 수 있는 "식민지 지배로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긴 데 대해 다시 한번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의 뜻을 표명"한다는 무라야마 담화의 반복이다. 무라야마 담화 역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에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긴 데 대해 "통절한 반성의 뜻"과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 이후 일본 정부의 대아시아 정책의 기본 방침으로 계승돼 왔다.
새롭게 볼 내용은 사할린 잔류 한국인에 대한 지원과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 반환 등의 인도적인 협력을 계속하는 것은 물론 "한반도에서 가져온 도서를 인도하겠다"고 밝히는 대목이다. 사할린 잔류 한국인 지원이나 강제 징병ㆍ징용자 유골 반환은 이미 양국이 협력해 꾸준히 사업을 진행해 왔기 때문에 새삼스런 내용은 아니다.
문화재 반환은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나 민간단체의 줄기찬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당시 문화재까지 포함한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는 자세를 굽히지 않았던 점에 비추어 보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인도 대상은 궁내청에 보관 중인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해 '제실(帝室)도서' '경연(經筵)'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새 담화 발표를 앞두고 자민당 등 보수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담화 내용이 청구권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아 전후보상문제는 사실상 언급되지 않았다. 문화재 역시 '반환'이 아니라 '인도'라는 표현을 써 청구권 문제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향후 구체적인 인도 협상 과정에서도 일본 정부는 궁내청 소장 문화재나, 이번 한차례 인도로 문화재 반환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라고 못박고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 아쉬운 것은 한일병합 관련 담화를 조약 체결일인 22일이나 공포일인 29일을 굳이 피해 10일에 서둘러 발표한 점이다. 한일기본조약에는 병합조약 무효 조항이 있지만 일본 정부는 이를 '조약 체결 자체는 국제법상 유효했고 한국 정부 수립으로 무효가 됐다'고 해석하고 있다. 병합조약 관련 날짜에 담화를 발표하면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점을 다분히 의식한 결정이다.
도쿄=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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