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 49대 헌강왕릉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솜씨 있는 도굴꾼이 쥐도 새도 모르게 도굴을 했던 모양인데 도굴용으로 뚫고 덮어두었던 구멍이 큰 비에 뻥, 하고 드러나 버린 것이다. 조사단을 따라 들어간 헌강왕릉 속은 도굴꾼의 싹쓸이로 텅텅 비어 있었다.
조사단이 왕릉 속에서 발견한 것은 부장품이 아니라 도굴꾼이 남긴 담배꽁초, 라면봉지, 작고 조잡한 나무 사다리가 전부였다. 왕릉이나 고분 등을 도굴하여 매장물을 파내는 도둑을 우리는 도굴꾼이라 한다. 아이러니하게 도굴꾼도 매장문화재에 대해서는 전문가라는 것이다.
알아야 도둑질을 할 수 있고, 도둑질을 하다보면 가히 척척박사가 된다는 것이다. 한 도굴꾼 출신이 양복을 입고 사학자로 변신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도굴꾼이란 전직을 화려한 양복으로 감추었을 때 그는 권위 있는 사학자였다. 대학에서, 국가기관에서조차 그를 찾아가 궁금한 것을 물어볼 정도였다.
한 도굴꾼은 예술가로 성공했다. 그는 도자기문화재를 주로 도굴했는데 늘 훔치다보니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그를 도예가로 성공시켰다. 이 나라 정치가 도굴꾼 같다. 양복만 입으면, 금배지만 달면 옛날을 덮어버리고 다들 정치전문가가 된다. 지난 8일의 개각 명단을 보면서 왜 도굴꾼 생각이 나는지, 텅 빈 헌강왕릉 속이 떠오르는지.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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